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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떡국

맑은 장국에 가래떡을 얄팍하게 썰어 넣어 끓인 국. 원래는 새해 아침(歲旦)에 먹는의 절식(節食)으로, 묵은 해가 가고 천지만물이 갱생부활(更生復活)하는 날은 엄숙하고 청결하여야 한다는 원시 종교적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떡국을 먹으면서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했다.떡국을 먹는 풍습의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최남선(崔南善)의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됐으며, 상고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飮服)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떡국에 관한 기록은 조선 중기의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에 병갱(餠羹)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는데, 그때의 병갱이 지금의 떡국과 같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국수·수제비·떡국을 모두 아우른 것으로 보인다. 이후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흰떡을 엽전과 같이 잘게 썰어서 간장국에 섞어서 쇠고기와 꿩고기와 고춧가루를 섞어 익힌 것을 병탕(餠湯)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병탕이 곧 떡국이다. 꿩고기를 구하기가 어려워 닭고기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은떡국에서 유래한 것이다.이밖에《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와 《경도잡지(京都雜志)》 등 조선시대의 도성인 한양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들에서 떡국을 만드는 내용 등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세찬(歲饌)으로 빠져서는 안 될 음식이라고 하였다. 주재료인 가래떡은 과거에는 권모(拳摸) 또는 백병(白餠)이라고 불렀는데, 그

톨레도 역사도시

톨레도 역사도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3가지 색채가 깃들어있는 도시로 로마시대부터 16세기까지 수도였다. 198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톨레도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70킬로미터(km) 거리에 있는 인구 6만 여 명의 작은 도시로, 마드리드가 수도가 되기 전 1천 여 년 동안 스페인의 중심지였다.  도시는 로마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서고트 왕국, 이슬람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다. 삼면이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바위산 위에 건설되었으며,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고향인 카스티야-라 만차 지방 톨레도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덕분에 톨레도에는 로마시대 유물인 원형경기장부터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유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사실상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단위 면적당 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로 꼽힌다.  각종 종교 시설이나 박물관은 물론 일반 가정집까지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이 때문에 1561년 필리페 2세의 천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상실되었어도 톨레도는 여전히 스페인의 정신적인 수도로 불리고 있다. 톨레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데하르 양식 건축물이다. 무데하르는 이슬람 지배가 끝난 뒤에도 스페인에서 살았던 이슬람교도들을 일컫는 말이며, 무데하르 양식이란 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과 서구 문화가 결합된 건축 양식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스페인 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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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음력 정월 초하룻날. 세수(歲首)·원단(元旦)·원일(元日)·신원(新元)이라고도 하며, 근신·조심하는 날이라 해서 한문으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쓴다. 조선시대에 의정대신(議政大臣)들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箋文)과 표리(表裏:거친 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치고 정전(正殿)의 뜰로 나가 조하(朝賀)를 올렸으며, 8도에서도 관찰사·병사(兵使)·수사(水使)·목사(牧使)는 전문과 방물(方物)을 바쳤다. 이 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歲粧)이라고 하며 어른들을 찾아 뵙는 일을 세배라 한다. 이 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 세찬으로는 떡국[餠湯]을, 세주로는 초백주(椒栢酒)·도소주(屠蘇酒)가 나오는데, 떡국은 손님 대접에도 쓰고 제사에도 쓰므로,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또 시루떡[甑餠]을 쪄서 올려 놓고 신에게 빌기도 하고, 삭망전(朔望奠)에 올리기도 한다. 한편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또한 각 관아의 서예(胥隸:衙前과 종)와 각 영문(營門)의 교졸(校卒:장교·나졸) 등은 종이를 접어 이름을 쓴 명함을 상관이나 선생의 집에 드린다. 그러면 그 집에서는 대문 안에 옻칠한 쟁반을 놓고 이를 받아들이는데 이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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