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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평화회의

파리평화회의

제1차 세계대전 종료 후, 전쟁에 대한 책임과 유럽 각국의 영토 조정, 전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 등을 협의한 1919년 ~ 1920년 동안의 일련의 회의 일체를 가리킨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 주도로 이루어진 약 5개월 간의 기본 협의(평화회의)와 이에 따라 차례로 진행된 패전국과의 조약협상(강화회의)이 1920년까지 진행되었다. 이를 한데 모아 ‘파리평화회의’라고 지칭한다. 유럽에서 진행된 전쟁으로 유럽을 장기간 무질서 속에 빠뜨린 결과, 새로운 규칙과 제도를 마련하여 질서를 회복하고 지킬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유럽의 정치, 외교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장기간 그리고 다양한 회의를 진행하였다. 여기서 과거 유럽사에서 전후 새로운 질서체제를 구축한 베스트팔렌조약(1648), 빈 조약(1815)과 같은 강도 높은 체제를 찾아야 할 무거운 책무가 놓여져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협상국세력(영국, 프랑스, 러시아 - 이탈리아, 미국, 기타 다수)이 동맹국세력(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이탈 -헝가리, 불가리아, 투르크) 측에 대하여 승리하여, 자연히 회의의 주도권은 협상국(승전국)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동맹국(패전국)은 참여를 허용하지 않았다. 처음 회의는 영국,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일본 5개국이 주축이 되었으나, 일본은 유럽 문제에 큰 관심이 없어 자진 빠졌고, 이탈리아는 아드리아해의 피우메 지역 영토 분쟁문제로 파리회의에서 철수하여, 결국 영국(로이드 조지 Lloyd George 수상), 프랑스(조지 클레망소 Georges Clemenceau 대통령), 미국(토마스 윌슨 Thomas W.

달 밧

달 밧

콩으로 만든 수프인 달(dhal)과 밥을 함께 낸 음식 조합을 뜻하는 인도 아대륙의 요리이다. 달과 밥을 함께 낸 음식 구성을 말한다. 인도, 말레이시아, 네팔과 같은 인도 아대륙 전역에서 즐기는 요리이며 네팔의 대표적인 요리이기도 하다. 쌀이 잘 자라지 않는 네팔의 고지대에서는 옥수수나 메밀, 보리, 기장과 같은 곡물이나 로티를 쌀의 대체품으로 활용한다. 요리의 또 다른 구성인 달은 주로 붉은 렌틸콩을 재료로 하여 만든 수프를 뜻하는 것으로, 노란색이나 갈색 렌틸콩을 재료로 하여 만들 수도 있다. 달 밧에는 종종 네팔 등의 인도 아대륙에서 즐겨 먹는 카레인 타르카리(तरकारी)를 곁들여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구성의 요리는 ‘달 바트 타르카리(दाल भात तरकारी)’라고 부른다. 그 밖에도 다히(दही)라고 하여 인도 아대륙에서 즐기는 발효 유제품이나 고기 혹은 생선 요리, 닭고기 카레, 피클 등을 함께 낼 수도 있다. 이때 모든 요리는 큰 금속형 쟁반에 올려서 빠빠드와 함께 먹을 수 있다. 조리법 팬에 기(ghee)나 기름을 두르고 잘게 썬 양파를 넣어 달달 볶는다. 불을 낮춘 뒤 다진 마늘과 생강, 으깬 고추 씨, 고춧가루, 터메릭을 넣고 잘 섞으며 볶는다. 붉은 렌틸콩을 넣고 조리하다가 물을 넣어 끓인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콩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조리면 달이 완성된다. 완성된 달 위에

포블레트 수도원

포블레트 수도원

스페인 타라고나주의 포블레트에 있는 수도원.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카탈루냐 지방의 한적한 골짜기에 있는 수도원과 성채가 결합된 유일한 건축물이다. 시토회의 전형적인 수도원 건축 가운데 하나로서, 1149년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렌게르 4세가 건설하였다. 중세에는 군주들의 보호를 받았고 전성기를 누린 14세기에는 근처에 있는 산테클뤼우수도원·발보나수도원과 함께 '시토회의 3각형'이라고 일컬어졌다. 수도원 앞에는 커다란 앞뜰이 펼쳐져 있다. 12세기에 처음 세운 회랑은 15세기에 개축하였는데, 로마네스크양식의 기둥머리와 고딕양식의 아치가 결합한 형태로 되어 있다. 회랑 가운데에는 분수가 있고 그 주변에 집회실·접견실·식당·부엌·도서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회랑 남쪽에는 성당이 있고 북쪽에는 1185년에 지은 병원이 있다. 성당은 로마네스크양식으로 건설하였는데, 내부에는 1529년 다미안 포르멘이 제작한 제단 장식벽으로 꾸민 주제단이 있다. 성당 교차부에는 카탈루냐 아라곤 왕실의 역대 왕들과 귀족들의 무덤이 있다. 수도원 주위에는 14세기에 만든 3중 성벽을 둘렀으며 방어용 탑과 '왕궁의 문' 등이 세워져 있다. 199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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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늬토기

민무늬토기

무늬없는 토기.
청동기시대의 특징적인 토기로 알려져 있다. 신석기시대에 유행하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서 점차 소멸하고 대신 각지에서 다양한 모습의 무늬없는 토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민무늬토기는 빗살무늬토기에 비해 대체로 태토가 정선되지 못하고 기벽이 두터우며, 노천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졌기 때문에 흔히 적갈색을 띠고 있다. 기형(器形)의 측면에서 볼 때, 빗살무늬토기는 뾰쪽바닥과 둥근바닥이 많았지만 민무늬토기는 대부분이 납작바닥이라는 점이 큰 특색이고, 아울러 그릇에 목이 달린 토기가 많아진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사발 ·보시기 ·접시 ·잔 ·항아리 등 다양한 기종(器種)의 민무늬토기는 각 지역별로 상당한 형태상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어, 압록강 하류 유역의 미송리(美松里)식 토기, 압록강 중류 유역의 공귀리(公貴里)식 토기, 두만강 유역의 공렬토기(孔列土器), 청천강 이남의 평안도 및 황해도 지역의 팽이형 토기, 한강 유역의 가락(可樂)식 토기, 충남 일원의 송국리(松菊里)식 토기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초기 철기시대에 유행한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와 덧띠토기[粘土帶土器] 등도 민무늬토기의 범주에 포함된다. 민무늬토기는 BC 300년경부터 파급되기 시작한 철기(鐵器)문화와 함께 새로운 토기로서 두드림무늬토기[打捺文土器]가 등장하자 점차 소멸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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