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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푸딩

썸머 푸딩

베리류의 과일과 설탕을 끓여내어 그릇 모양으로 만든 흰 빵에 붓고 밤새 재워낸 푸딩으로 영국의 전통적이고 인기 있는 디저트이다. 흰 빵에 베리류의 과일과 설탕을 끓인 것을 부어 만든 푸딩이다. 영국의 전통적이고 인기 있는 디저트이며 ‘썸머 프루트 푸딩(Summer fruit pudding)’이라고도 한다. 썸머 푸딩은 19세기에 건강 스파와 리조트에서 유래한 디저트로 본래 ‘하이드로파틱 푸딩(Hydropathic pudding)’이라 불렸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푸딩으로 20세기 초반에 썸머 푸딩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때 요리에 쓰이는 빵은 오래된 것을 활용할수록 과일즙이 빵 사이에 잘 스며들기 때문에 오래된 빵을 사용하여야 한다. 디저트에 쓰이는 과일로는 과즙이 많은 베리류가 활용되는데 전통적으로는 라즈베리와 레드커런트를 4대 1비율로 섞어 활용한다. 그밖의 과일로는 블랙커런트, 딸기, 화이트커런트, 블랙베리가 사용될 수 있다. 썸머 푸딩은 더블 크림, 크렘 프레슈, 클로티드 크림을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조리법 레드커런트, 블랙커런트, 라즈베리를 깨끗하게 씻어 놓는다. 팬에 베리류의 과일과 설탕을 넣고 과일즙이 흘러나올 때까지 3~5분간 끓인다. 이때 과일이 푹 익지 않도록 주의한다. 식빵은 오래된 것을 준비하여 테두리를 제거한다. 작은 볼을 준비하여 바닥에 식빵 1장을 깔고 5

쿠트나 호라: 성바르바라 성당이 있는 역사지구와 세들레츠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쿠트나 호라: 성바르바라 성당이 있는 역사지구와 세들레츠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체코 체히주에 있는 도시유적. 보헤미아 지방 서쪽 분지에 세워진 도시로서 13세기 후반 은광맥이 발견되어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14세기에는 유럽 최대의 은 산출지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주조된 은화(프라하그로센)는 국제통화로 인정받았다. 14∼15세기의 번영기에는 은으로 축적한 부로 도시 곳곳에 화려하게 장식된 궁전과 성당 등이 세워졌다. 체코를 대표하는 후기고딕 양식의 성바르바라 성당은 1388년 무렵 착공하여 1512년 완성하였다. 1개의 신랑(身廊)과 4개의 측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차 모양의 리브 볼트로 이루어진 높은 내부 공간을 갖추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본체 볼트의 무게를 분산하고 벽체 구조에 경쾌감을 주는, 고딕 양식 구조물인 플라잉 버트레스를 설치하였다.   새들레츠 지구에 있는 성마리아 성당은 1304년 건설한 시토회 수도원 성당으로서, 1707년 무렵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우르술라회 수도원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서, 장식이 많은 벽·기둥과 타원 모양의 볼트로 꾸민 천장 등이 특징이다. 일반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돌의 집'에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파사드가 있다. 후기고딕 양식의 건물로서 현재 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된다. 1994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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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송시열

조선 후기 문신 겸 학자, 노론의 영수. 주자학의 대가로서 이이의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황의 이원론적인 이기호발설을 배격하고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지지, 사단칠정이 모두 이라 하여 일원론적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예론에도 밝았다. 주요 저서에는 《송자대전》 등이 있다.
본관 은진(恩津). 자 영보(英甫). 호 우암(尤庵)·화양동주(華陽洞主). 시호 문정(文正). 아명 성뢰(聖賚). 1633년(인조 11) 생원시(生員試)에 장원급제하여 최명길(崔鳴吉)의 천거로 경릉참봉(敬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 1635년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이듬해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扈從)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고, 1637년 화의가 성립되자 낙향, 1649년 효종이 보위에 오르자 장령(掌令)에 등용, 세자시강원진선(世子侍講院進善)을 거쳐 집의(執義)가 되었으나 당시 집권당인 서인(西人)의 청서파(淸西派)에 속한 그는 공서파(功西派)의 김자점(金自點)이 영의정이 되자 사직하고 다시 낙향하였다. 이듬해 김자점이 파직된 뒤 진선에 재임명되었으나 김자점이 청나라에 조선이 북벌을 계획하고 있다고 밀고함으로써 북벌계획의 인물로 지목받아 청의 압력으로 사직하고 다시 낙향하였다. 그뒤 충주목사(忠州牧師)·집의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657년(효종 8) 효종에게 정유봉사(丁酉封事) 상소를 올려 그의 북벌정책을 비판하였고 이로 인해 효종의 양보를 이끌어 내었다. 1658년(효종 9) 찬선에 등용되고, 이조판서로 임명되어, 효종의 명을 받아 북벌계획을 담당하였으나 이는 명목상 추진하였을 뿐 실질적인 북벌정책에는 반대했다. 이듬해 효종이 급서하자&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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