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텃만쁠라

텃만쁠라

생선살, 타이 레드 커리 페이스트, 달걀 노른자, 카피르 라임 리프 등을 첨가하여 반죽한 뒤 둥글 납작하게 튀겨낸 어묵 튀김으로, 타이의 요리이다. 생선살에 타이 레드 커리 페이스트(Thai red curry paste)를 첨가하여 둥글납작하게 튀겨낸 어묵이다. 타이어로 ‘텃(ทอด)’은 튀기다를, ‘만(มัน)’은 기름을, ‘쁠라(ปลา)’는 생선을 의미한다. 요리는 칼고기과에 속하는 쁠라가리(ปลากราย)를 주로 사용하고, 그 밖에 흰 살 생선의 필레를 활용할 수도 있다. 그밖에 재료로는 카피르 라임 리프, 롱빈(long bean), 타이 바질 등을 첨가할 수 있다. 텃만 쁠라에는 식초에 절인 오이와 찹쌀밥 등을 곁들일 수 있다. 조리법푸드프로세서에 생선살과 타이 레드 커리 페이스트, 달걀 노른자, 설탕을 넣고 갈아준다. 이것을 볼에 담고 작게 썬 롱빈, 타이 바질, 카피르 라임 리프를 넣어 섞는다. 넉넉하게 기름을 두른 팬에 둥글납작하게 빚은 반죽을 올려 양면을 노릇노릇하게 튀긴다.  믹서에 칠리고추, 물, 식초, 설탕, 소금을 넣고 갈은 다음, 작은 냄비에 담아 약 5분간 저어주며 졸여서 소스를 완성한다. 완성된 소스는 식혀 놓는다. 완성된 텃만 쁠라는 접시에 담고 소스는 작은 볼에 얇게 자른 오이와 샬롯 그리고 구운 땅콩을 먼저 넣고 그 위에 부어서 요리에 곁들여 낸다.

그라나다-알람브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그라나다-알람브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중세 도시의 유적으로서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94년 지정 범위가 확장되었다. 스페인(에스파냐) 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자치지방의 그라나다주에 있는 중세 도시의 유적이다. 안달루시아 지역은 이슬람 국가의 지배를 받아 아랍과 유럽 문화가 공존하며, 그중에서도 그라나다는 무어인(Moors)들이 그라나다왕국(1238∼1492)을 세워 아랍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18세기에 한때 폐허가 되었던 이 지역은 1832년 미국의 작가이자 외교관인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 쓴 《알람브라 이야기 Tales of the Alhambra》가 출간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복원되어 1943년 스페인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된 뒤 1994년에 지정 범위가 확장되었다. 지정된 문화유산은 알람브라궁전(Alhambra) 지역과 알바이신(Albayzín) 주거지구를 중심으로 한다. 아랍어로 '붉은색'을 뜻하는 알람브라는 그라나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해발 740m의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본래 군사 요새로 건설되었다가 이슬람 왕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알람브라궁전은 1238년 나스르왕조를 세운 무하마드 이븐 알 아마르(Muhammad ibn al Ahmar)가 건설하기 시작하여 여러 대에 걸쳐 증축 및 개수되었으며, 14세기 유수프 1세(Yusuf I)와 그의 아들 모하메드 5세(M

슬라이드 바로가기
정몽주

정몽주

고려 말기 문신 겸 학자.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다. 《주자가례》를 따라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했다. 시문에도 뛰어나 시조〈단심가〉외에 많은 한시가 전해지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본관 영일(옛 연일). 자 달가(達可). 호 포은(圃隱). 초명 몽란(夢蘭)·몽룡(夢龍). 시호 문충(文忠). 영천(永川)에서 태어났다. 1357년(공민왕 6) 감시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 예문검열(藝文檢閱)·수찬·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냈으며, 1363년 동북면도지휘사 한방신(韓邦信)의 종사관으로 여진족(女眞族) 토벌에 참가하고 1364년 전보도감판관(典寶都監判官)이 되었다. 이어 전농시승(典農寺丞)·예조정랑 겸 성균박사(禮曹正郞兼成均博士)·성균사예(成均司藝)를 지냈고, 1371년 태상소경보문각응교 겸 성균직강(太常少卿寶文閣應敎兼成均直講) 등을 거쳐 성균사성(成均司成)에 올랐으며, 이듬해 정사(正使) 홍사범(洪師範)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376년(우왕 2)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으로 이인임(李仁任) 등이 주장하는 배명친원(排明親元)의 외교방침을 반대하다 언양(彦陽)에 유배, 이듬해 풀려나와 사신으로 일본 규슈[九州]의 장관에게 왜구의 단속을 청하여 응낙을 얻고 잡혀간 고려인 수백 명을 귀국시켰다. 1379년 전공판서(典工判書)·진현관제학(進賢館提學)·예의판서(禮儀判書)·예문관제학·전법판서·판도판서를 역임, 이듬해 조전원수(助戰元帥)가 되어 이성계(李成桂) 휘하에서 왜구토벌에 참가하였다. 1383년 동북면조전원수로서 함경도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 다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