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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 성탄절. 12월 25일이며 24일 밤, 즉 그 전날 밤이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루를 전날의 일몰로부터 다음 날 일몰까지로 쳤기 때문에 이 전야인 이브가 중요시되었다. 그리스도가 12월 25일 오전 0시에 탄생하였다고 하는 확증은 없으며,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만들어낸 신화(神話)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는 신약성서 《마태오의 복음서》나 《루가의 복음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그 날짜에 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은 3세기에 들어와서부터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초기에는 그 날짜가 일정하지 않아서 1월 6일, 3월 21일(춘분), 12월 25일 가운데 어느 하루가 선택되었다. 로마 교회(서방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된 것은 354년경부터로 보이며, 조금 뒤인 379년부터 그리스교회(동방교회)가 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봄의 광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동지(冬至)의 축일, 다시 말하면 태양숭배의 습속을 이용하여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농경사회의 로마에서는 ‘사투르날리아’라는 농경신 새턴의 제일(祭日)이 12월 21~31일(혹은 17~24일까지, 또는 1월 1일)까지 계속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 신은 본래 그리스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고대 이탈리아의 신으로서, 크로노

뷔슈 드 노엘

뷔슈 드 노엘

굵은 통나무의 모양을 본떠 만든 프랑스 케이크의 한 종류로 제누와즈에 초콜릿 혹은 커피 버터크림 등을 첨가하여 만든다. 프랑스 문화권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먹는 전통적인 후식이다. 굵은 통나무의 모양을 본떠 만든 프랑스 케이크의 한 종류로, 프랑스를 포함하여 벨기에, 레바논, 스위스, 퀘백 등의 프랑스 문화권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즐겨 먹는 전통적인 롤케이크이다. 프랑스어로 뷔슈는 장작을, 노엘은 크리스마스를 뜻하여, 뷔슈 드 노엘이라 하면 크리스마스 장작을 의미한다. 영어권에서는 같은 의미에서 ‘율 로그(Yule log)’라 한다. 유럽인들은 예로부터 다음 해의 풍작을 기원하며 크리스마스이브에 오래 탈 수 있는 장작을 골라 적어도 삼일 밤낮을, 이상적으로는 새해까지 불을 지피던 전통을 가지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 전통적인 난로가 사라지면서, 19세기 후반경 과거의 전통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뷔슈 드 노엘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재료 뷔슈 드 노엘은 주로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이후에 제공되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디저트이며, 프랑스식 케이크 시트인 제누와즈를 활용하여 만든 롤케이크 겉면에 초콜릿 버터크림이나 커피 버터크림을 발라 포크로 그 결을 살려 실제 통나무와 유사한 겉모습을 만들어낸다. 바닐라 제누와즈 대신 초콜릿 제누와즈를 활용하기도 하며 가나슈나 에스프레소, 리큐르 등을 첨가하기도 한다. 여기에 설탕을 활용하여 나뭇잎을 만들거나, 버섯 모양의 머랭, 슈가 파우더로 만든 눈, 피스타치오로 만든 이끼 등 추가적인 장식을 하여 보다 정교한 형태의 뷔슈 드 노엘을 제작할 수도 있다.

잘츠부르크 역사지구

잘츠부르크 역사지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같은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예술의 도시로 드라마틱한 도시 전경, 역사적 의미가 깊은 도시 구조, 수세기에 걸쳐 많은 교회건물과 유서 깊은 건축물등을 가지고 있는 교회적 도시형태의 중요한 모범사례이다. 199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사람은 영화 속의 무대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심했을 수도 있다. 중세양식의 건축물과 호수와 숲, 그리고 하얀 눈이 덮인 산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환상의 세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도시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이다. 빈에서 서쪽으로 300km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는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특히 모차르트의 생가는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그곳에는 모차르트가 사용하던 바이올린과 자필 악보, 가족의 초상화,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매년 여름 그를 기리는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열리면, 도시는 온통 관광객들로 북새통이 되곤 한다. 잘츠부르크는 '소금의 산'이라는 뜻이다. 7세기 후반만 해도 황량했던 도시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라이헨할 소금광산 덕택이다. 광산의 소금으로 부를 쌓은 잘츠부르크는 1077년부터 묀히스베르크산 언덕에 호헨잘츠부르크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후 후기 고딕양식과 바로크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도시 여기저기에 들어서자, 이 도시는 '알프스의 북로마'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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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대장경

초조대장경

고려 현종 때 판각한 고려 최초의 대장경이다. 거란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만들어졌으며, 또한 목판인쇄술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거란(契丹)의 침입으로 개경(開京)이 함락 당하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고려 현종 2년(1011년) 발원하여 선종 4년(1087)에 걸쳐 완성된 고려 최초의 대장경이다. 불력에 의한 국가 수호를 도모하는 것이 제작의 직접적 동기이지만 고려의 불교적 역량이 반영된 국가적 사업이었다. 성종대에 전래한 송의 개보판(開寶版) 대장경과 국내에서 전래되어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처음 작업이 이루어졌고 문종년간에는 새로 전래한 거란의 대장경까지 제작에 참고하였다. 그 규모는 대략 6천 권 정도의 분량으로서 당시의 한역(漢譯) 대장경으로서는 동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었다. 여기에는 정교하게 새겨진 판화가 풍부해 미술사적 가치도 적지 않다. 대장경의 조판 작업은  흥국사, 귀법사 등 여러 사원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경판은 흥왕사 대장전(大藏殿)에 한동안 보관되었다가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符仁寺)로 옮겨졌다. 고종 19년(1232) 몽고군의 침입으로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몽고와의 항전이라는 호국의 의지를 담아 대규모 작업을 다시 시도한 것이 해인사대장경판(팔만대장경)의 각판이다. 한때 초조대장경의 조판 동기는, 현종이 돌아가신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송 개보판 대장경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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