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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형제

라이트형제

미국의 비행기 제작자이자 항공계의 개척자 형제, 오빌(Orville) 라이트와 윌버(Wilbur) 라이트. 1903년 역사상 처음으로 동력비행기를 조종하여 지속적인 비행에 성공하였다. 비행기개발에 대한 원조를 호소한 결과 1909년 프랑스에서 아메리칸 라이트 비행기 제작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형제가 공동으로 기계완구와 자전거점을 경영하다가 독일의 O.릴리엔탈이 글라이더 시험 중 추락사한 것을 알고 항공에 흥미를 가져 비행기 연구를 시작하였다. 1900년과 이듬해에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키티호크에서 2회에 걸쳐 글라이더의 시험비행을 하였다. 그 후 데이턴에서 비행기의 과학적 연구에 착수, 모형으로 200회 이상 시험하였고, 1902년 키티호크에서 1000회에 이르는 글라이더 시험비행을 하였다. 같은 해 12월 데이턴에 돌아와 형제가 직접 만든 가솔린기관을 기체에 장치하여 1903년 12월 17일 키티호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동력비행기를 조종하여 지속적인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것은 12hp의 발동기를 부착한 무미익복엽기(無尾翼複葉機)로 된 플라이어 1호(號)로서, 처음 비행은 오빌의 조종으로 12초 동안 36m를 날았고, 2번째 비행은 59초 동안 243.84m를 비행하였다. 1904년 허프먼 프레리에서 45분 동안 비행하였고, 상하 좌우로 조종하는 문제도 해결하였다. 1905년 플라이어 3호는 주회(周回)비행에 여러 차례 성공, 40km를 38분에 비행한 기록도 세웠다. 1908년 유럽 각지를 순회하면서 그들의 비행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그 뒤로 라이트 형제는 기체와 기관의 제작에만 전념하면서 그들의 비행기 개발을 원조해 주도록 여러 나라에 호소하였다. 1908년 마침내 미국 연방정부는 그들의 비행기 1대를 구입하였고,

시르니키

시르니키

밀가루 반죽 안에 트보록을 넣고 튀긴 러시아 전통 요리. 밀가루 반죽에 트보록(Творог: 러시아식 코티지 치즈)을 넣어 기름에 튀긴 러시아 전통 요리이다. 지름 5cm 정도로 작고 둥글게 만든다. 차 문화가 발달한 러시아에서는 갓 조리한 따뜻한 시리니키를 디저트로 하여 차와 함께 즐긴다. 스메타나(Сметана: 러시아식 사워크림)를 한 스푼 올려 먹거나 과일잼, 초콜렛 등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어원 러시아어로 치즈를 뜻하는 '시르(сыр)'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그러나 시르니키의 속은 일반 치즈가 아닌 트보록으로 채운다. 그럼에도 이 요리가 시르니키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18세기 이전까지 트보록이 일반 치즈와 함께 시르라고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트보록'이라는 고유명사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트보록으로 속을 채운 이 요리는 그대로 시르니키로 불리게 되었다. 만드는 방법 먼저 끈적임이 적은 신선한 트보록을 강판에 문질러 으깨준다. 이 때 크기는 팥알 정도로 하고, 입자는 몽글몽글한 정도가 좋다. 으깬 트보록에 설탕, 소금, 계란을 넣고 한데 섞는다. 견과류나 말린 과일 등을 첨가하면 식감을 더욱 살릴 수 있다. 잘 반죽된 트보록을 한 움큼씩 집어 공 모양으로 여러 개를 만든다. 이후 미리 체에 받쳐 두었던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고대 도시와 코라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고대 도시와 코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남서쪽에 있는 고대도시 케르소네스스와 초라(포도원으로 사용된 농경지) 유적으로,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케르소네소스(Chersonese, Chersonesos, Chersonesus, Cherson)는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 타우리카(Taurica) 또는 타우릭 케르소네소스(Tauric Chersonese)라고 불렸던 크림반도(Krym Pen.,; 우크라이나 남쪽, 흑해로 돌출해 있는 반도)의 남서쪽에 있었던 고대도시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우크라이나 크림주(州) 세바스토폴(Sevastopol)의 외곽지역에 해당한다. 고대 그리스 식민도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어서 ‘우크라이나의 폼페이’ 또는 ‘러시안 트로이’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기원전 5세기에 고대 그리스의 도리스인(Dorians)들이 흑해 북부의 해안 지역인 이곳에 식민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케르소네소스란 말은 그리스어로 ‘반도’라는 뜻이지만 이후 이 고대도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4세기부터 번영하기 시작한 케르소네소스는 그리스 북동부 지역과 타우리카(크림반도), 스키타이족(Scythian)이 살던 러시아 남부로 진입하는 관문으로서 해상무역의 요지였고, 2천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흑해의 무역 루트를 연결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이곳에 남아 있는 도시(폴리스 polis) 유적과 도시 외곽에 있었던 초라(chora; 직사각형의 농경지) 유적은 기원전 4세기~기원전 3세기에 식민지 개척자들이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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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기

정상기

조선 후기 실학파의 지리학자로, 과학적인 백리척을 이용하여 《동국지도 東國地圖》를 제작하였다. 토지 개혁에서부터 병사(兵事)·산업·재정·의약 등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의 전반을 실용적인 이용면에서 연구하였다. 본관 하동(河東). 자 여일(汝逸). 호 농포자(農圃子). 이익(李瀷)의 문인. 일찍이 편모슬하에서 자라 병약하여 과거를 단념하고 집에서 학문을 연구한 실학파의 지리학자이다. 과학적인 백리척(百里尺)을 이용, 《동국지도 東國地圖》를 제작하여 역대 국경(國境) 변천의 역사·지리학적 검토를 기도하였고 군현(郡縣)의 연혁, 산천도리(山川道里), 관방(關防)의 성곽, 해로(海路), 북간도강계(北間島疆界), 궁실(宮實) 등에 대한 역사적 변천을 기술하였다. 특히 산천의 기사(記事)는 정치적 관점을 벗어난 근대적 안목을 보여주었으며 토지개혁에서부터 병사(兵事)·산업·재정·의약 등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의 전반을 실용적인 이용면에서 연구하였다. 실학파 가운데 이익을 종조(宗祖)로 하는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가 그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만년에 아들 항령(恒齡)이 왕을 배종한 공으로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 《인자비감(人子備鑑)》, 《농포문답(農圃問答)》, 《심의설(深衣說)》, 《도령편(韜鈴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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