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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제266대 교황.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1282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 출신 교황이자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첫 미주 출신,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이다.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플로레스 지역으로 이민 간 철도노동자의 다섯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1958년 예수회에 입문한 후 1963년 산미겔의 성 요셉 신학교에서 철학사 학위를 받고, 1964~1966년 산타페 인마콜라다대학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엘살바도르 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가르쳤다. 1967~1970년 성 요셉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2년여의 수련과정을 거쳐 1973년 종신서원을 하고, 1973~1979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지냈으며, 1980~1986년 산미겔 철학신학대학 학장 겸 산미겔 교구 파트리아르카 산호세 본당 주임 사제로 활동하였다.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받고 주교품을 받았으며, 199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주교, 이듬해에 대교구장이 되었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2005~2011년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지냈다. 2013년 3월 13일 건강 상의 이유로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제266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시리아 출신 교황인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고, 2000년의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초의 미주 출신이자 최초의 예수회 출

까삐

까삐

새우나 크릴을 발효시켜 만든 타이의 장으로, 카레, 수프, 샐러드, 볶음, 소스 등에 활용되는 향신료이다. 새우나 크릴에 소금을 첨가하여 발효시킨 타이의 장이다. 까삐는 어두운 보랏빛이나 회갈색을 띠며 걸쭉한 페이스트의 질감을 갖는다. 또한 블루치즈의 향과 비슷한 삭힌 냄새가 강하게 나고 짭짤한 맛과 진한 감칠맛을 낸다. 까삐는 지역마다 활용되는 재료가 달라 맛도 다양하다. 타이 중부에 위치한 사뭇송크람은 크릴 새우를 이용하여 까삐를 만드는데, 타이 내에서도 질 좋은 까삐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이 남부 지역에서는 순수하게 새우로만 만든 까삐, 새우와 생선을 함께 갈아 만든 까삐, 단 맛이 나는 까삐 이렇게 세 종류의 까삐를 생산한다. 까삐는 소스나 양념 뿐만 아니라 카레나 수프, 샐러드, 볶음과 같은 다양한 요리에 활용된다. 카놈찐남니아오, 미앙 캄과 같은 요리에 직접 활용하기도 하고, 타이식 칠리 소스인 남프릭까삐(วิธีทำ น้ำพริกกะปิ), 남찜싸테 등의 소스를 만들기도 하며 깽쿠어와 같은 커리 페이스트를 만드는데에도 사용된다. 까삐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새우나 크릴을 소금과 함께 24시간 이상 발효시켰다가 물기를 빼고, 그물 위에 넓게 펴낸 뒤 햇빛에 수일간 말린다. 말린 내용물을 으깨어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였다 요리에 활용한다.

그라나다-알람브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그라나다-알람브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중세 도시의 유적으로서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94년 지정 범위가 확장되었다. 스페인(에스파냐) 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자치지방의 그라나다주에 있는 중세 도시의 유적이다. 안달루시아 지역은 이슬람 국가의 지배를 받아 아랍과 유럽 문화가 공존하며, 그중에서도 그라나다는 무어인(Moors)들이 그라나다왕국(1238∼1492)을 세워 아랍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18세기에 한때 폐허가 되었던 이 지역은 1832년 미국의 작가이자 외교관인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 쓴 《알람브라 이야기 Tales of the Alhambra》가 출간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복원되어 1943년 스페인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된 뒤 1994년에 지정 범위가 확장되었다. 지정된 문화유산은 알람브라궁전(Alhambra) 지역과 알바이신(Albayzín) 주거지구를 중심으로 한다. 아랍어로 '붉은색'을 뜻하는 알람브라는 그라나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해발 740m의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본래 군사 요새로 건설되었다가 이슬람 왕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알람브라궁전은 1238년 나스르왕조를 세운 무하마드 이븐 알 아마르(Muhammad ibn al Ahmar)가 건설하기 시작하여 여러 대에 걸쳐 증축 및 개수되었으며, 14세기 유수프 1세(Yusuf I)와 그의 아들 모하메드 5세(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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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이준

한말의 항일애국지사. 독립협회에 참여하고, 개혁당, 대한보안회, 공진회,헌정연구회 등을 조직했다. 보광,오성학교를 세웠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이위종 등과 합류했으나, 일본측의 방해로 참석 못하고 순국했다. 호 일성(一醒)·해사(海史)·청하(靑霞)·해옥(海玉). 본명 순칠(舜七). 초명 성재(性在)·여천(汝天)·선재(璿在). 함경남도 북청(北靑)에서 출생하였다. 29세에 북청에서 초시(初試)에 합격, 1894년(고종 31) 함흥 순릉참봉(純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상경, 이듬해 신설된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에 들어가 6개월 후에 졸업하고, 1896년 한성재판소(漢城裁判所) 검사보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조신(朝臣)들의 불법과 비행을 들추어 파헤치다가 그들의 면관(免官) 운동 때문에 취임 1개월 만에 면직되고 곧 독립협회에 가담, 평의장(評議長)으로 활약하다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897년(광무 1)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과에 들어가 이듬해 졸업하고 귀국, 다시 독립협회 일을 보다가 무고로 간부 17명과 함께 피체, 수개월 후 석방되었다. 1899년 독립협회가 강제해산되자 민영환(閔泳煥)·이동휘(李東輝)·이상재(李商在) 등과 비밀결사 개혁당을 조직, 러일전쟁 후 일제의 한국침략과 친일 주구(走狗)들의 활동이 노골화하자 대한보안회(大韓保安會)를 조직하여 황무지 개척권을 얻으려는 일제의 음모를 폭로하고 일진회(一進會)와 대항하여 공진회(共進會)를 조직, 회장에 추대되었다. 친일대신(親日大臣) 5명을 성토하다가 피체, 철도(鐵島)로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민영환·이용익(李容翊)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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