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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광범위한 연구를 하였으며, 주요 업적으로 무거운 별에 관한 이론, 우주선 속에서 관측된 새 입자가 양전자·중간자라는 사실의 지적, 우주선 샤워의 메커니즘, 핵반응에서 중간자의 다중발생, 중양성자 핵반응 등이 있다. 뉴욕 출생. 아버지는 독일에서 이주한 부유한 유대계 무역상인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후에 독일에서의 나치즘의 발흥과 안티세미티즘(antisemitism:반유대주의)의 파동 속에서 급속하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25년 하버드대학교를 졸업, 케임브리지대학교·괴팅겐대학교에 유학한 후에 여러 대학에서 연구생활을 거쳐 캘리포니아대학교와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로스앨러모스의 연구소장으로서 원자폭탄제조계획을 지도했고, 전후에는 1946∼1952년 원자력위원회의 일반자문위원회 의장, 1947∼1966년 프린스턴고등연구소장으로 있었다. 1954년 그 동안의 수소폭탄제조계획에 대한 반대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원자력 관련 기밀사항에 대한 접근을 금지당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론물리학 연구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하여, 초기에는 분자에 대한 양자역학(量子力學)과 산란(散亂)의 문제를 연구한 것을 비롯하여 양자전기역학(量子電氣力學)·우주선(宇宙線)·원자핵론에 이르고 있다. 주요 업적은 무거운 별에 관한 이론, 우주선 속에서 관측된 새 입자가 양전자·중간자라는 사실의 지적, 우주선 샤워의 메커니즘, 핵반응에서 중간자의 다중발생, 중양성자 핵반응 등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많은 사람과 공동으로 미국의 이론물리학계에 지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1963년 엔리코페르미상을 받은 바 있고, 주요저서에는 《The Op

까삐

까삐

새우나 크릴을 발효시켜 만든 타이의 장으로, 카레, 수프, 샐러드, 볶음, 소스 등에 활용되는 향신료이다. 새우나 크릴에 소금을 첨가하여 발효시킨 타이의 장이다. 까삐는 어두운 보랏빛이나 회갈색을 띠며 걸쭉한 페이스트의 질감을 갖는다. 또한 블루치즈의 향과 비슷한 삭힌 냄새가 강하게 나고 짭짤한 맛과 진한 감칠맛을 낸다. 까삐는 지역마다 활용되는 재료가 달라 맛도 다양하다. 타이 중부에 위치한 사뭇송크람은 크릴 새우를 이용하여 까삐를 만드는데, 타이 내에서도 질 좋은 까삐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이 남부 지역에서는 순수하게 새우로만 만든 까삐, 새우와 생선을 함께 갈아 만든 까삐, 단 맛이 나는 까삐 이렇게 세 종류의 까삐를 생산한다. 까삐는 소스나 양념 뿐만 아니라 카레나 수프, 샐러드, 볶음과 같은 다양한 요리에 활용된다. 카놈찐남니아오, 미앙 캄과 같은 요리에 직접 활용하기도 하고, 타이식 칠리 소스인 남프릭까삐(วิธีทำ น้ำพริกกะปิ), 남찜싸테 등의 소스를 만들기도 하며 깽쿠어와 같은 커리 페이스트를 만드는데에도 사용된다. 까삐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새우나 크릴을 소금과 함께 24시간 이상 발효시켰다가 물기를 빼고, 그물 위에 넓게 펴낸 뒤 햇빛에 수일간 말린다. 말린 내용물을 으깨어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였다 요리에 활용한다.

그라나다-알람브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그라나다-알람브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중세 도시의 유적으로서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94년 지정 범위가 확장되었다. 스페인(에스파냐) 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자치지방의 그라나다주에 있는 중세 도시의 유적이다. 안달루시아 지역은 이슬람 국가의 지배를 받아 아랍과 유럽 문화가 공존하며, 그중에서도 그라나다는 무어인(Moors)들이 그라나다왕국(1238∼1492)을 세워 아랍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18세기에 한때 폐허가 되었던 이 지역은 1832년 미국의 작가이자 외교관인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 쓴 《알람브라 이야기 Tales of the Alhambra》가 출간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복원되어 1943년 스페인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된 뒤 1994년에 지정 범위가 확장되었다. 지정된 문화유산은 알람브라궁전(Alhambra) 지역과 알바이신(Albayzín) 주거지구를 중심으로 한다. 아랍어로 '붉은색'을 뜻하는 알람브라는 그라나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해발 740m의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본래 군사 요새로 건설되었다가 이슬람 왕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알람브라궁전은 1238년 나스르왕조를 세운 무하마드 이븐 알 아마르(Muhammad ibn al Ahmar)가 건설하기 시작하여 여러 대에 걸쳐 증축 및 개수되었으며, 14세기 유수프 1세(Yusuf I)와 그의 아들 모하메드 5세(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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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이준

한말의 항일애국지사. 독립협회에 참여하고, 개혁당, 대한보안회, 공진회,헌정연구회 등을 조직했다. 보광,오성학교를 세웠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이위종 등과 합류했으나, 일본측의 방해로 참석 못하고 순국했다. 호 일성(一醒)·해사(海史)·청하(靑霞)·해옥(海玉). 본명 순칠(舜七). 초명 성재(性在)·여천(汝天)·선재(璿在). 함경남도 북청(北靑)에서 출생하였다. 29세에 북청에서 초시(初試)에 합격, 1894년(고종 31) 함흥 순릉참봉(純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상경, 이듬해 신설된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에 들어가 6개월 후에 졸업하고, 1896년 한성재판소(漢城裁判所) 검사보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조신(朝臣)들의 불법과 비행을 들추어 파헤치다가 그들의 면관(免官) 운동 때문에 취임 1개월 만에 면직되고 곧 독립협회에 가담, 평의장(評議長)으로 활약하다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897년(광무 1)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과에 들어가 이듬해 졸업하고 귀국, 다시 독립협회 일을 보다가 무고로 간부 17명과 함께 피체, 수개월 후 석방되었다. 1899년 독립협회가 강제해산되자 민영환(閔泳煥)·이동휘(李東輝)·이상재(李商在) 등과 비밀결사 개혁당을 조직, 러일전쟁 후 일제의 한국침략과 친일 주구(走狗)들의 활동이 노골화하자 대한보안회(大韓保安會)를 조직하여 황무지 개척권을 얻으려는 일제의 음모를 폭로하고 일진회(一進會)와 대항하여 공진회(共進會)를 조직, 회장에 추대되었다. 친일대신(親日大臣) 5명을 성토하다가 피체, 철도(鐵島)로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민영환·이용익(李容翊)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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