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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결주의

민족자결주의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중심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힘의 팽창과정에서 제국주의 집단체제간의 충돌로 일어났다. 이들 제국주의 강대국들에게는 ‘힘의 논리’에 의해 약소국을 점령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강대국들은 그 점령을 서로 묵인해주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하였다. 한편, 강대국들간의 충돌에 대비하여 강대국들은 이해관계가 근접한 국가간에 집단체제(협상국, 동맹국)를 형성하여 상대세력을 위협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이 결국 집단간의 전쟁(세계대전)으로 폭발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 중심의 동맹국측 패배로 종전되었고(1918. 11. 11), 승전국측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회복해야하는 책무를 갖게 되었다. 전후 처리의 중심은 승전국인 영국·프랑스·미국이 되었고, 그 대표로는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재임 1917~1922) 수상, 프랑스의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 재임 1917~1920) 대통령, 미국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재임 1913~1921) 대통령이었다.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오를란도(Vittorio Emanuele Orlando) 수상은 처음에는 승전국 대표로 참석하였으나, 후에 국내문제로 참석하지 않았다.각국 대표들은파리에 모여 평화회의를 장기간 열었고, 학자적 자질을 가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국회에

모데나의 대성당, 토레 치비카, 피아차 그란데

모데나의 대성당, 토레 치비카, 피아차 그란데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 주(州)에 위치한 도시 모데나(Modena)에 있는 대성당과 종탑, 광장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에밀리아로마냐 주(州)에 있는 도시로 중세의 종교·건축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도시의 중앙 광장인 피아차 그란데(Piazza Grande)에는 모데나 대성당과 그에 딸린 종탑인 토레 치비카(Torre Civica)가 자리잡고 있다. 모데나 대성당을 중심으로한 도시의 주요 유적이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모데나 대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빼어난 로마네스크 양식 종교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되어 있다. 본래 이곳에 있었던 두 교회가 파괴된 이후 11-12세기 이탈리아 북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성이었던 토스카나의 마틸다 백작 부인의 후원을 받아 1099년에 건설을 시작하였다. 유명 건축가였던 란프란코(Lanfranco)와 빌리겔무스(Wiligelmus)가 건축에 참여 하였으며 1184년에 봉헌식이 거행 되었고 1322년에 완공되었다. 대성당의 외벽은 흰색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나 건축 당시 로마 시대에 이 자리에 있다가 파괴된 교회의 잔해를 섞어 사용 하였기 때문에 종종 붉은 색이나 회색 돌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의 내 외부 벽면에는 다양한 성경 구절을 표현한 부조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으며 1719년과 1934년에 제작된 파이프 오르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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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3·1운동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전 민족이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으로 일제 강점기에 나타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이기도 하다.
원인과 배경 3·1운동은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민족의 저항으로 일어났다. 일본은 조선을 강점한 뒤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무단통치(武斷統治)를 실시했다.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해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을 학살·투옥하고 모든 형태의 반일 활동을 탄압했다. 그리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와 자유도 누리지 못하게 했으며, 조선태형령(朝鮮笞刑令)으로 가벼운 죄에도 가혹한 신체적 처벌을 가하여 인권을 유린했다. 또한 토지조사사업과 회사령 등으로 민족 산업의 발전을 억압하고 경제적 수탈을 자행하였다. 1910년대에 지속적으로 나타난 이러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약탈로 농민을 비롯한 민중의 생활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지가 높아졌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민족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주체적인 여건을 준비하였다. 1910년대 국내의 항일민족운동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첫째는 독립전쟁론의 관점에 기초해 무장조직의 결성과 지원을 목적으로 했던 비밀결사운동이다. 대한독립의군부, 민단조합, 광복회, 조선국민회 등의 비밀결사가 각지에서 결성되어 군자금 모금과 무기구입 등을 추진했다. 많은 조직들이 일제에 발각되어 파괴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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