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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아우구스투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내정의 충실을 기함으로써 41년간의 통치기간 중에 로마의 평화시대가 시작되었으며,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리비우스 등이 활약하는 라틴문학의 황금시대를 탄생시켰다.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이다. 서민 출신이나 그의 어머니가 카이사르의 질녀로 아버지가 죽은 후 카이사르의 보호를 받았다. BC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에 그의 유언장에 양자 및 후계자로 지명되어 있음을 알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개명하였다. 카이사르의 유병(遺兵)을 장악하여 BC 43년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제2회 삼두정치(三頭政治)를 시작하면서 반대파를 추방하였다. BC 42년에는 필립피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암살자인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격파하고 로마 세계를 3분하여, 안토니우스는 동방을, 옥타비아누스는 서방을, 그리고 레피두스는 아프리카를 각각 장악하였다. 그러나 레피두스를 탈락시킨 후부터는 안토니우스와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BC 31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악티움 해전에서 격파한 후 패권을 잡았다. 그는 장군으로서의 역량은 빈약하였으나 아그리파를 비롯하여 여러 부장의 조력과 나아가 전 이탈리아, 그리고 전체 속주(屬州)로부터 충성의 맹세를 받아내어 신중하게 일을 처리함으로써, 100년에 걸친 공화정 말기의 내란을 진정하였다. 질서회복 후에는 비상대권을 원로원과 민중에게 돌려주었고, BC 27년에는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칭호를 원로원으로부터 받았으며, 공화정의 명목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제정(帝政)을 시작하였다. 그는 시민 가운데의 프린켑스

카티 롤

카티 롤

납작한 빵 위에 야채, 치즈나 고기 등을 올려 돌돌 말아 먹는 음식으로, 인도의 요리이며 웨스트벵골주 콜카다에서 유래하였다. 납작한 빵 위에 각종 재료를 올려 돌돌 말아낸 음식이다. 인도의 요리로, 인도 동부 웨스트벵골주에 위치한 콜카타(Kolkata)에서 유래하였다. 케밥을 파라타로 말아 먹었던 것에서 출발하여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요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요리에는 파라타와 같은 둥글 납작한 형태의 빵들을 사용하고 속재료로 감자, 양파, 고추, 양배추, 당근, 콩 등의 야채 파니르 같은 치즈, 고기, 달걀, 국수, 처트니 등 다양한 재료가 쓰일 수 있다. 그 중 달걀과 닭고기, 코리앤더 처트니를 속에 넣고 만든 카티 롤이 가장 일반적이다. 소스로는 각종 처트니가 활용될 수 있다. 카티 롤은 인도 전역의 노점상은 물론,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캐나다와 미국에서도 패스트푸드로 점차 인기를 끄는 추세이다. 조리법 파니르를 작은 크기로 자른다. 볼에 요구르트, 간 마늘, 간 생강, 고춧가루, 가람 마살라(garam masala: 매운맛이 강한 마살라로, 서아시아에서 즐겨 쓰이는 혼합 향신료), 터메릭, 호로파 잎 가루, 소금을 넣고 섞은 다음 잘라둔 파니르를 넣어 버무린다. 팬에 오일을 두르고 다진 양파와 고추, 소금을 넣고

나폴리 역사지구

나폴리 역사지구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 나폴리에 있는 역사도시유적. 2,5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로서 다양한 역사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나폴리는 BC 470년 무렵 네아폴리스(새로운 도시)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다. BC 4세기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로마시민의 피한지와 항해도시로 번영하였다. 553년에는 동로마제국의 관할하에 들어갔고 763년에는 나폴리공국으로 독립하여 여러 세기에 걸친 번영기를 맞이하였다.  1266년에는 프랑스 앙주가(家)의 수도가 되었고 1282년에는 나폴리왕국이 성립되었다. 15세기 중반에는 르네상스 문화의 번성으로 전성기를 누렸으며, 16세기 초에는 에스파냐의 중앙집권 정책 아래 행정과 사법의 중심지가 되었다. 19세기 초에는 시칠리아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1820년에는 나폴리혁명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860년에는 이탈리아왕국이 성립하였다. 도시 곳곳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남아 있다. 고대의 유적으로는 시 근교에 있는 로마시대 카타콤베(지하묘지)의 프레스코화, 4세기에 건설한 산타레스티투타(Santa Restituta)성당, 동로마시대인 5세기의 산조반니 인 폰테 세례당의 모자이크 등이 있다.  중세의 건축물로는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델로보(dell'Ovo)성, 앙주가의 샤를 1세가 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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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전

신기전

조선시대에 사용된 로켓추진 화살. 1448년(세종 30년) 제작된 병기(兵器)로서 고려 말기에 최무선(崔茂宣)이 화약국에서 제조한 로켓형 화기(火器)인 주화(走火)를 개량한 것이다. 대신기전(大神機箭)·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중신기전(中神機箭)·소신기전(小神機箭) 등의 여러 종류가 있는데, 병기도설 신기전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대신기전은 총 길이 5583㎜, 안정막대 길이는 5310.8㎜이며, 지금의 로켓엔진에 해당하는 약통은 길이 695㎜, 직경 102㎜, 두께 16.2㎜, 내경 63.1㎜, 분사구멍 직경 37.5㎜이다. 대나무로 만든 화살대의 윗부분에 한지로 만든 약통을 부착하고, 폭탄에 해당되는 방화통을 약통 위에 올려놓고 도화선을 약통과 연결하여 신기전이 목표지점에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설계되었다. 약통에는 화약을 채우고 바닥에 지름 37.5mm 크기의 구멍을 뚫어 화약이 연소되면서 가스를 분출시켜 로켓처럼 날아갈 수 있도록 하였으며 사정거리는 약 2㎞에 달하였다. 세종 때 90개가 제조되어 의주성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 산화신기전은 총 길이와 안정막대 길이가 5310.8㎜로 같고, 약통의 제원은 대신기전과 같으나 발화통을 변형하여 윗부분이 지화(地火)와 발화(發火)를 함께 넣어 적을 혼란에 빠뜨릴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중신기전은 총 길이 1455㎜, 안정막대 길이는 1406㎜이며, 약통은 길이 200㎜, 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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