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무클루바

무클루바

냄비에 익힌 고기, 튀긴 야채, 쌀을 겹겹이 쌓아 조리한 음식으로, 레반트 지역의 전통적인 요리이다. 조리한 고기와 야채를 쌀과 함께 쌓아 조리한 음식이다. 레반트 지역의 전통적인 요리로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에서 즐겨 먹는다.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요리로, 대규모 모임이나 잔치를 위해 준비되기도 한다. 이때 무클루바는 아랍어로 ‘거꾸로(upside down)’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는 냄비에 차곡차곡 내용물을 쌓은 뒤 냄비를 거꾸로 뒤집어 먹는 방식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고기는 닭고기나 양고기를 사용하며, 야채는 주로 콜리플라워나 가지가 사용되나 그 밖에도 토마토, 감자, 양파, 주키니, 브로콜리, 벨페퍼가 쓰이기도 한다. 쌀은 전통적으로 이집트 라이스를 사용하였으나, 오늘날에는 흔히 바스마티 라이스를 사용한다. 요리는 잣과 잘게 썬 파슬리로 장식되며, 샐러드와 신선한 요구르트와 함께 제공된다. 조리법 큰 냄비에 물, 양파, 마늘, 시나몬, 터메릭, 가람 마살라, 소금, 후추를 넣고 끓인다. 여기에 작게 토막 낸 양고기를 넣고 낮은 불에서 15~20분간 끓여 익힌다. 익은 고기와 육수는 따로 담는다. 가지와 콜리플라워는 잘라서 튀기거나 오일을 뿌려 오븐에 굽는다. 큰 냄비 바닥에 양고기를 겹겹이 쌓고, 가지와 콜리플라워를 올린다. 고기와 야채 위에 씻은 바스마티 라이스와 양고기를 끓인 육수를 붓고 냄비 뚜껑을 덮어 쌀이 익을 때까지 낮은 불로 30~40분간 끓인

아빌라 옛 시가지와 대성당

아빌라 옛 시가지와 대성당

스페인 카스티야레온(Castile-Leon) 자치지역 아빌라주에 있는 역사도시 유적. 이슬람세력을 막기 위한 성채도시로서 중세의 성벽과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성녀 테레사(Saint Teresa of Ávila, 1515~1582)와 성자 존(Saint John of the Cross, 1542~1591)이 태어난 곳이다. 해발 1,117m의 높은 지점, 바위언덕의 평평한 봉우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11세기에 무어인들로부터 에스파냐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특히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6세(Alfonso VI)의 사위인 레몽 드 부르고뉴가 1090년에 갈색 화강암으로 건축한 중세의 성벽이 유명하다. 직사각 모양의 기본 구조에 전체 길이 2.5㎢, 최대 너비 3m, 평균 높이 12m의 규모로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성벽은 사람 가슴 높이만한 흉장을 덧씌워 만들었으며 88기의 탑과 성문 9개를 설치해 놓았다. 성벽 동쪽에는 시토회 양식의 대성당을 지었는데, 방어를 위하여 장식을 최소화하였으며 창도 작게 만들었다. 성벽 안에는 여러 채의 귀족저택들과 엘살바도르대성당 등의 역사 건축물들을 세웠다. 아빌라는 옛시가지의 면적이 제한되어 있어 건축물 대부분을 성벽 밖에 지었다. 주교좌가 설치되어 흥미로운 교회 건축물이 많이 건설되었는데, 이중 12~14세기에 세운 대성당은 로마네스크양식에서 고딕양식으로 이행해가는 시기의 건축물이다. 흉장이 딸린 성벽

슬라이드 바로가기
이색

이색

고려 말의 문신·학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정방 폐지, 3년상을 제도화하고, 김구용·정몽주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우왕의 사부였다. 위화도 회군 후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를 억제하려 했다. 조선 태조가 한산백에 책봉했으나 사양했다.
본관 한산(韓山). 자 영숙(潁叔). 호 목은(牧隱). 시호 문정(文靖). 이제현(李齊賢)의 문하생.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1341년(충혜왕 복위 2) 진사(進士)가 되고, 1348년(충목왕 4) 원(元)나라에 가서 국자감(國子監)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했다. 1351년(충정왕 3) 부친상(父親喪)으로 귀국, 1352년(공민왕 1) 전제(田制)개혁 ·국방강화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당면정책을 왕에게 건의했다. 1353년 향시(鄕試)와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향시에 장원 급제하였고 135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에 가서 회시(會試)에 장원, 전시(殿試)에 차석으로 급제, 국사원편수관(國史院編修官) 등을 지내다가 귀국하였다. 이듬해 다시 원나라의 한림원(翰林院)에 등용되었다. 1356년 귀국하여 이부시랑(吏部侍郞) 등 인사행정을 주관, 정방(政房)을 폐지하였고, 이듬해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때는 3년상(三年喪)을 제도화했다. 1361년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왕의 남행(南幸)을 호종, 1등공신이 된 후 좌승선(左承宣)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1367년 대사성(大司成)이 되자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김구용(金九容)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1373년 한산군(韓山君)에 책봉된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