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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프랑스가 식민지이던 인도차이나 3국의 재지배를 위하여 일으킨 전쟁(1946∼1954). 19세기 말 이후 인도차이나 3국(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은 프랑스 지배하에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진주로 1945년 3월 프랑스 세력은 무너지고 일본세력을 업은 베트남의 바오다이황제, 캄보디아의 시아누쿠왕(王), 라오스의 시 사왕봉왕이 등장하였다. 그해 8월 일본의 패망으로 일본의 괴뢰(傀儡)였던 안남(安南)의 완조(阮朝) 정부를 무너뜨린 베트남 독립동맹(베트민)은 9월 2일 호찌민[胡志明]을 주석(主席)으로 하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였다. 한편 라오스에서는 반프랑스 조직인 자유라오스, 캄보디아에서는 총리 손곡탄(Son Nogoc Tanh) 등이 중심이 되어 지난 3월의 독립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3국의 영유(領有) 부활을 꾀하던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사이공에 상륙한 프랑스군은 베트남군과 군사충돌을 되풀이하였다. 평화교섭에 의한 독립을 희망하는 베트남측은, 1946년 3월 프랑스와의 사이에 프랑스군의 베트남 북부 진주(進駐)와 프랑스 연방의 테두리 안에서의 독립을 승인한다는 독립예비협약(豫備協約)을 체결했는데, 남부 문제를 협의한 그해 4월의 다라트(Darat) 회의 후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에서 남부의 분리를 기도하여, 사이공에다 코친차이나(Cochin China) 임시정부를 세웠다. 그래서 독립 본협정(本協定)을 토의하기 위하여 7월에 파리 남쪽의 퐁텐블로에서 열린

카눌레

카눌레

원통형에 세로로 홈이 파져있는 작은 케이크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유래한 지역 특산품이다. 밀가루, 우유, 달걀노른자, 버터, 럼, 바닐라 등을 첨가하여 만든 케이크로, 작은 원통형에 세로로 홈이 파진 형태를 띤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디저트이자 특산품이다. 이때 카눌레(Canelé)는 프랑스 남부 가스코뉴 일대에서 쓰이는 오크어 방언인 가스코뉴어(Gascon)에서 ‘세로로 파인 홈’을 뜻하는 단어 ‘Canelat’에서 유래한 말이다. ‘Cannelé’라고도 쓰며, ‘카눌레 드 보르도(Canelés de Bordeaux)’라고도 한다. 겉 부분은 약간 탄 듯이 단단하고 바삭바삭한 식감에 어두운 갈색을 띤다. 약간의 쌉쌀한 맛이 있으나, 속은 커스터드와 같이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 달콤한 맛이 난다. 카눌레는 전통적으로 세로로 홈이 파진 원통형의 작은 몰드(cylindrical fluted mold)에서 구워지는데, 과거에는 몰드 내부를 밀랍으로 닦아 반죽이 몰드에 붙지 않도록 했으나, 현재는 버터를 발라 반죽이 붙는 것을 막는다. 이때 카눌레의 크기는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아침식사로 먹을 때는 상대적으로 큰 크기의 카눌레가 사용되며, 간식이나 디저트로 먹을 때는 손가락으로 집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다. 음식의 유래

피렌체 역사지구

피렌체 역사지구

이탈리아 토스카니주 피렌체에 있는 역사지구. 메디치가 지배하의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지였다.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지오토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들이 피티, 우피치 궁전, 산타크로체 교회 등에 남아 있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미켈란젤로, 지오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유명 예술가들의 걸작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피렌체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예술과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메디치 가문 덕분이었다. 금융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피렌체에서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했던 메디치 가문은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 덕분에 라파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단테, 보티첼리 등 쟁쟁한 거장들이 피렌체에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던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렌체의 역사지구는 사방 1km밖에 안 되는 좁은 구역이다. 하지만 지역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서 걸작품들을 보면 ‘꽃’의 도시(피렌체는 꽃이라는 의미이다)라는 이름이 진정 무색하지 않다. 마치 작품 하나하나가 꽃이 되어 거리에 벽면에 피어서 도시를 장식하고 있는 것 같다. 피렌체 중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작품이다. 175년 동안 공을 들여 만든 건물답게 장엄하고 화려해서 피렌체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오랫동안 피렌체의 정치 중심지였던 시뇨리아 광장에서는 코지모 1세 동상과 종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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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윤봉길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윤황(尹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에서 태어났다(1908).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호는 매헌(梅軒)이다. 10세 되던 해인 1918년 덕산(德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다음 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정신의 영향으로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하였다. 동생인 윤성의(尹聖儀)와 함께 한학을 공부하였고, 1921년부터는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사서삼경 등 한문학을 계속하였다. 한문학 공부를 마치고, 1926년부터는 농민계몽·독서회운동 등 농촌사회운동을 펴나갔다. 농촌사회운동 농민계몽을 위해 《농민독본(農民讀本)》이란 교재를 집필하여 야학회를 조직,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농촌의 불우한 청소년을 가르쳤다. 농촌의 발전을 위해 ‘부흥원(復興院)'이란 단체를 설립하여(1929), 농촌 부흥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그해 2월 18일 부흥원 주관으로 학예회를 열고, 촌극인 ‘토끼와 여우’를 공연하였는데, 농촌에서 문화활동이 많지 않던 당시여서 관람객이 매우 많이 모여 성공리에 마쳤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농촌활동을 계속하였고, ‘월진회(月進會)'라는 농민단체를 만들어 회장에 추대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농촌자활운동을 펴나갔다. 또한 건강한 신체 위에서 농촌의 발전과 민족독립정신이 길러질 수 있다는 신념으로 ‘수암체육회(修巖體育會)'를 조직하여 농민들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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