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파의 지리학자로, 과학적인 백리척을 이용하여 《동국지도 東國地圖》를 제작하였다. 토지 개혁에서부터 병사(兵事)·산업·재정·의약 등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의 전반을 실용적인 이용면에서 연구하였다. 본관 하동(河東). 자 여일(汝逸). 호 농포자(農圃子). 이익(李瀷)의 문인. 일찍이 편모슬하에서 자라 병약하여 과거를 단념하고 집에서 학문을 연구한 실학파의 지리학자이다. 과학적인 백리척(百里尺)을 이용, 《동국지도 東國地圖》를 제작하여 역대 국경(國境) 변천의 역사·지리학적 검토를 기도하였고 군현(郡縣)의 연혁, 산천도리(山川道里), 관방(關防)의 성곽, 해로(海路), 북간도강계(北間島疆界), 궁실(宮實) 등에 대한 역사적 변천을 기술하였다. 특히 산천의 기사(記事)는 정치적 관점을 벗어난 근대적 안목을 보여주었으며 토지개혁에서부터 병사(兵事)·산업·재정·의약 등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의 전반을 실용적인 이용면에서 연구하였다. 실학파 가운데 이익을 종조(宗祖)로 하는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가 그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만년에 아들 항령(恒齡)이 왕을 배종한 공으로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 《인자비감(人子備鑑)》, 《농포문답(農圃問答)》, 《심의설(深衣說)》, 《도령편(韜鈴篇)》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