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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야스쿠니신사

일본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區]에 있는 일본 최대의 신사. 일본 도쿄[東京]의 한가운데인 지요다구[千代田區] 황궁 북쪽에 있는 신사(神社)로, 8만여 개에 달하는 일본 전역의 신사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신사 중의 신사로 불린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인 1869년 막부(幕府) 군과의 싸움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일본의 신'으로 추앙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신사가 만들어질 당시의 명칭은 도쿄 쇼콘샤[招魂社]로, 일본 전역에 세워진 쇼콘샤 가운데 황실이 나서 참배하는 신사였다. 이후 쇼콘샤는 일본의 대외침략과 발맞추어 국가신도의 군사적 성격을 대표하는 신사로 자리잡았고, 세이난[西南]전쟁 2년 뒤인 1879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즉 호국신사이자 황국신사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전쟁에서 사망한 자들의 영령을 위해 제사하고, 여기에 천황의 참배라는 특별한 대우를 해줌으로써 전쟁 때마다 국민에게 천황숭배와 군국주의를 고무, 침투시키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하였다. 또 전몰자들은 천황을 위해 죽음으로써 생전의 잘잘못은 상관 없이 신(神)이 되어, 국민의 예배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쟁터로 떠났을 만큼 모든 가치의 기준을 천황에 대한 충성 여부에 두었고, 따라서 야스쿠니신사의 제신(祭神) 원리

바인 푸 테

바인 푸 테

타피오카 전분 등을 넣은 반죽에 녹두 속을 채워 쪄낸 떡으로, 베트남 북부 박닌(Bac Ninh) 지방의 전통적인 음식이다.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든 반죽에 녹두로 속을 채워 쪄낸 떡이다. 베트남 북부 하박성 남서부에 위치한 ‘박닌(Bac Ninh)’지방에서 디저트나 간식으로 즐겨먹는 전통적인 음식이다. 여기서 베트남어로 ‘바인(bánh)’은 빵이나 케이크, 떡과 같이 모든 종류의 가루로 만든 음식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쌀이나 타피오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을 말한다. ‘푸테(phu thê)’는 부부를 의미한다. 부부의 떡이라는 이러한 명칭은 12세기 베트남의 군주였던 ‘리 아인 똥(Ly Anh Tong)’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래지인 박닌 지방에서는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한 예물로서 미래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신부의 집에 보낸다. ‘바인 쑤 쎄(Bánh xu xê)’라고도 하며, 결혼식 피로연에서 손님들에게도 대접된다. 조리법 녹두를 물에 씻은 뒤 약 1시간가량 불린다. 밥솥이나 찜기에 녹두와 물을 넣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쪄낸다. 푸드 프로세서에 익힌 녹두, 오일, 설탕, 바닐라 슈거를 넣어 갈은 다음, 작은 공 모양으로 빚어 소를 만들어 둔다. 그 다음 냄비에 물, 타피오카전분, 설탕, 오일, 잘게 썬 코코넛을 넣고 잘 저어주며 끓여 반죽을 만든다. 여기에 식용 색소나 다운 판단 추출물을 첨가하여 색을 낸

블라디미르와 수즈달의 백색 기념물군

블라디미르와 수즈달의 백색 기념물군

러시아의 서부 블라디미르와 수즈달 두 도시에 있는 중세 석회암 건축물들이다. 대부분 성채, 교회, 수도원으로 지어졌으며 중세 러시아의 건축 양식과 예술의 발전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유럽 동부에서 아시아 북부 지방까지 넓게 걸쳐 있는 국가 러시아(Russia)의 세계유산이다. 러시아 서부 블라디미르 주(Vladimir Oblast)에 위치한 두 도시 블라디미르(Vladimir)와 수즈달(Suzdal)에 자리 잡고 있다. 블라디미르는 블라디미르 주의 중심 도시로 수도 모스크바(Moscow)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져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수즈달은 블라디미르에서 26km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블라디미르와 수즈달은 중앙 러시아의 예술 중심지로 국가의 건축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화려하고 장대한 공공건물과 종교 건물들은 보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중세 석회암 건축물은 총 8개이다.  성 데메트리우스 성당(the Cathedral of Saint Demetrius)과  성모 몽소승천 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황금 문(Golden Gate), 안드레이 보골류프스키 성(The castle of Andrey Bogolyubsky), 네를 성모 마리아 교회(Church of the Intercession of the Holy Vir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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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조식

조선 중기 학자. 출사를 거부하고 평생을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경상우도의 특징적인 학풍을 이루었으며, 퇴계 이황의 경상좌도 학맥과 더불어 영남 유학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본관 창녕(昌寧). 자 건중(楗仲,健中). 호 남명(南冥). 시호 문정(文貞). 김우옹·곽재우는 그의 문인이자 외손녀 사위이다. 삼가현(三嘉縣:지금의 합천) 토골[兎洞]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20대 중반까지는 대체로 서울에 살면서 성수침·성운 등과 교제하며 학문에 열중하였고, 25세 때 《성리대전》을 읽고 깨달은 바 있어 이때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30세 때 처가가 있는 김해 탄동으로 이사하여 산해정을 짓고 살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1538년 유일(遺逸)로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임명되었지만 관직에 나아가지 않다가, 45세 때 고향 삼가현에 돌아온 후 계부당(鷄伏堂)과 뇌룡정(雷龍亭)을 지어 살면서 제자들 교육에도 힘썼다. 1548~1559년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단성현감·조지서 사지(造紙署司紙) 등 여러 벼슬에 임명되었지만 모두 사퇴하였다. 단성현감 사직 때 올린 상소는 조정의 신하들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함께 국왕 명종과 대비(大妃) 문정왕후에 대한 직선적인 표현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렇게 모든 벼슬을 거절하고 오로지 처사(處士)를 자처하며 학문에만 전념하자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1551년 오건에 이어 정인홍·하항·김우옹·최영경·정구 등 많은 학자들이 찾아와 학문을 배웠다. 1561년 지리산 기슭 진주 덕천동[德山洞:지금의 산청군 시천면]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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