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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코 다 가마

바스코 다 가마

포르투갈의 항해자. 마누엘 1세의 인정을 받아, 70년에 걸친 인도항로 발견 대사업을 성취했다. 이슬람과 힌두 연합함대의 반격을 격파, 코친·카나놀 등에 상관을 설치하여 인도무역 독점의 기초를 다졌다. 국왕의 인도정책 고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대하여서는 그의 아버지가 투우사였다는 사실과 에보라에서 수학과 항해술을 배웠다는 것 외에는 분명하지 않다. 마누엘 1세의 인정을 받아, B.디아스의 희망봉(喜望蜂) 발견 후로 숙원이던 인도항로 개척의 원정대장이 되었다. 1497년 7월 8일 4척의 선대(船隊)와 175명의 선원을 인솔하고 리스본 벨렘 항구를 출범하였다. 도중까지 동행한 디아스의 조언대로, 시에라레온 앞바다에서 대서양을 서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혁명적 항법(航法)을 써서(약 6,400km), 11월 희망봉을 돌아 대륙 동해안을 북상(北上)하여 모잠비크·몸바사를 통과, 1498년 4월 말린디에 도착하였다. 모잠비크에서는 이슬람교도들의 적대적인 공격을 받아 범선 1척을 잃었으나, 우호적인 말린디에서는 이슬람의 수로(水路) 안내인 이븐 마지드의 도움으로 인도양을 횡단하였다. 5월 20일 캘리컷에 도착, 70년에 걸친 인도항로 발견의 대사업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독점무역에 위협을 느낀 이슬람 상인들의 방해와, 무력(武力)에 대한 지방 영주(領主)들의 경계심 때문에 정식 통상교섭은 난항을 거듭, 3개월 만에 겨우 약간의 향료를 입수하였다. 10월 다시 인도양을 횡단하여 올 때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항해하나, 괴혈병(壞血病) ·열병 등으로 선원의 반 이상을 잃었다. 1499년 9월 가까스로 리스본에 귀환하였을 때는 겨우 44명의&n

포하

포하

납작하게 눌러내어 만든 쌀이자 이 쌀에 각종 야채와 향신료를 첨가하여 만든 음식으로, 인도의 인기 있는 요리이다. 납작하게 눌러낸 쌀로, 인도에서 유래한 식재료이며 인도는 물론 네팔과 방글라데시에서도 즐겨 먹는다. 이 납작한 쌀에 각종 야채와 향신료를 첨가하여 만든 음식 또한 포하라고 하는데, 이는 인도 전역에서 즐겨 먹는 아침 식사로, 특히 서부와 북부 지역에서 인기 있는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사이드 디시를 곁들이지 않고 단독으로 먹지만 가니쉬로는 생 양파나 간 코코넛, 실란트로를 곁들인다.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주에서는 전통적으로 양파를 첨가하여 만든 포하인 칸다 포하(Kanda poha)를 만들어 먹는다. 조리법 두껍고 납작한 쌀을 준비한다. 부드러워질 때까지 흐르는 물에 씻고 물기를 뺀 다음, 터메릭과 소금을 넣고 섞는다. 팬에 오일을 두르고 머스타드 씨를 넣어 볶다가 땅콩, 다진 양파, 다진 그린 칠리 고추, 카레 잎을 넣고 양파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볶는다. 여기에 따듯한 물에 불려둔 완두콩을 넣고 물기를 빼 둔 포하와 물 약간을 넣고 볶는다. 이때 설탕과 잘게 썬 실란트로를 넣는다. 뚜껑을 덮은 뒤 낮은 불에서 약 2분간 익히면 요리가 완성된다. 완성된 포하는 그릇에 담고, 신선한 레몬즙을 뿌린다. 또한 가니쉬로 다진 실란트로나 간 코코넛을 곁들여 내어 먹는다.

대한매일신보

대한매일신보

1904년부터 국권피탈 때까지 발간되었던 일간신문이다. 2012년 10월 17일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04년 2월에 일어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던 영국인 배설(裵說, 베델:Ernest Thomas Bethell)이 양기탁(梁起鐸) 등 민족진영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7월 18일에 창간하였다.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던 무렵은 일본측이 한국 언론에 대해 검열을 실시하고 직접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한 일본 헌병사령부의 검열을 받지 않고 민족진영의 대변자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사세(社勢)가 확장되고 독자수도 늘어나면서,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된 이후에는 민족진영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적인 언론기관이 되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당시에는 타블로이드판(版) 6페이지로서 그 중에서 2페이지가 한글전용이었고, 4페이지는 영문판이었다. 창간 다음해인 1905년 8월 11일부터는 영문판과 국한문신문을 따로 분리하여 두 가지 신문을 발간하였다. 영문판의 제호는 《The Korea Daily News》였고, 창간 당시는 순한글로 만들었던 국문판은 국한문을 혼용하여 발간하였다. 그러나 국한문판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전용 신문의 필요성을 다시 느끼게 되어 1907년 5월 23일부터는 따로 한글판을 창간하여 대한매일신보사(社)는 국한문 ·한글 ·영문판 3종의 신문을 발행하였으며, 발행부수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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