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마오쩌둥

마오쩌둥

중국의 정치가. 중국공산당의 요직에서 활동하다가 중앙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연합정부론을 발표하였으며, 장제스와의 내전에 승리하고 베이징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국가주석 및 혁명 군사위원회 주석(1949~1959)으로서 제2차 5개년계획의 개시와 더불어 3면홍기 운동을 폈고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였다. 자 룬즈[潤之]. 1893년 후난성[湖南省] 샹탄현[湘潭縣] 사오산[韶山] 출생.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8세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13세까지 《논어》와 《사서(四書)》 등을 읽었다. 16세까지 아버지의 반대로 진학을 못하고 농사일을 도우며 틈틈이 책을 읽다가 1909년 둥산[東山]고등소학에 들어갔다. 그 뒤 창사[長沙]의 샹샹[湘鄕]중학으로 옮겼고, 동맹회 《민립보(民立報)》의 열렬한 독자가 되어 그 신문에 실린 반청론(反淸論)이나 혁명론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1911년 10월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혁명군에 입대하였다가 1912년 제대한 뒤 제1중학에 입학하였으며, 다시 제1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대학 공부나 외국 유학을 하지 못한 그는 이 학교에서, 영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중국의 봉건사상 비판에 힘썼던 교사 양창지[楊昌濟]를 만났고,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재학 중이던 1917년 그는 신민학회(新民學會)를 조직하였는데, 회원은 대부분이 제1사범학교 학생들이었고, 이 학회는 후난성 혁명 지식인들의 본영이 되었다. 1918년 학교를 졸업한 뒤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후난 청년들의 외국 유학을 도왔다. 그해 10월 마오쩌둥은 소년중국학회에 가입하였고, 양창지의 소개로 베이징 대학 도서관 주임인 리다자오[李大釗]의 조교로 일하면서 수업을 청강하였으며, 철학회와 신문학연구회(新文學硏究會)의 활동에

나폴리 역사지구

나폴리 역사지구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 나폴리에 있는 역사도시유적. 2,5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로서 다양한 역사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나폴리는 BC 470년 무렵 네아폴리스(새로운 도시)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다. BC 4세기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로마시민의 피한지와 항해도시로 번영하였다. 553년에는 동로마제국의 관할하에 들어갔고 763년에는 나폴리공국으로 독립하여 여러 세기에 걸친 번영기를 맞이하였다.  1266년에는 프랑스 앙주가(家)의 수도가 되었고 1282년에는 나폴리왕국이 성립되었다. 15세기 중반에는 르네상스 문화의 번성으로 전성기를 누렸으며, 16세기 초에는 에스파냐의 중앙집권 정책 아래 행정과 사법의 중심지가 되었다. 19세기 초에는 시칠리아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1820년에는 나폴리혁명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860년에는 이탈리아왕국이 성립하였다. 도시 곳곳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남아 있다. 고대의 유적으로는 시 근교에 있는 로마시대 카타콤베(지하묘지)의 프레스코화, 4세기에 건설한 산타레스티투타(Santa Restituta)성당, 동로마시대인 5세기의 산조반니 인 폰테 세례당의 모자이크 등이 있다.  중세의 건축물로는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델로보(dell'Ovo)성, 앙주가의 샤를 1세가 살던

슬라이드 바로가기
부여 사택지적비

부여 사택지적비

백제 의자왕때 활약했던 사택지적이 남긴 비. 2014년 12월 3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1948년 부여읍 관북리(官北里) 도로변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발견된 것은 비의 일부로서, 현존 높이 102cm, 너비 38cm, 두께 29cm이다. 양질의 화강암에 가로 세로로 정간(井間)을 구획하여 그 안에 평균 4.5cm 크기가 되는 글자를 음각하였다. 1행은 14자로 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것은 앞 부분에 해당하는 4행까지로서 모두 56자이다. 비의 오른쪽 윗부분에 봉황문이 새겨져 있으며 붉은 칠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문체는 중국 육조시대의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이며, 자체는 웅건한 구양순체(歐陽詢體)로서 문장이나 자체가 모두 세련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654년(의자왕 14)으로 추정되는 갑인년 정월에 나지성(奈祗城)의 사택지적이란 사람이 늙어가는 것을 탄식하여, 불교에 귀의하고 원찰을 건립했다는 것이다. ‘사택’이란 성은 백제의 대성팔족(大姓八族) 중의 하나인 ‘사씨(沙氏)’와 같은 것이며, 《일본서기》에도 백제에서 온 사신 ‘대좌평(大佐平) 지적’이란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이 비는 백제의 최고급 귀족이 남긴 중요한 금석문 자료라 하겠다. 1983년 9월 2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12월 31일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