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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

볼테르

18세기 프랑스의 작가, 대표적 계몽사상가. 비극작품으로 17세기 고전주의의 계승자로 인정되고, 오늘날 《자디그》, 《캉디드》 등의 철학소설, 역사 작품이 높이 평가된다. 백과전서 운동을 지원하였다. 본명 François-Marie Arouet. 파리 출생.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예수회 학교 루이 르 그랑에서 공부하였다. 1717년에 오를레앙공(公)의 섭정(攝政)을 비방하는 시를 썼다 하여 투옥되었는데, 비극 《오이디푸스 d’Þdipe》를 옥중에서 완성하고, 1718년에 상연하여 성공을 거둔 다음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바꾸었다. 그후 한 귀족과의 싸움으로 재차 부당하게 투옥되었으며, 국외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제정치하의 불평등에 환멸을 느끼고 1726년에 영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의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타고난 비판정신을 더욱 굳건히 하였다. 종교전쟁을 끝나게 한 앙리 4세를 찬양하는 서사시 《앙리아드 Henriade》(1728)를 출판한 후, 1729년에 귀국하였으며, 셰익스피어극의 영향을 받은 사상극 《자이르 Zaïre》(1732)를 발표하였다. 이어 《철학서간(영국서간) Lettres philosophiques ou Lettres sur les anglais》(1734)을 통하여 영국을 이상화하고 프랑스 사회를 비판하였기 때문에, 정부의 노여움을 샀다. 그 후 애인 뒤 샤틀레 후작부인의 영지(領地)에서 1734년부터 10년 간을 저술과 연구로 보냈다. 그동안 희곡 《마호메트 Mahomet》(1741) 《메로프 Mérope》(1743), 철학시 《인간론》(1738) 등을 발표

로작

로작

그린 망고, 파인애플, 히카마, 오이, 숙주, 튀긴 두부 등에 시큼하고 매콤한 맛의 소스와 으깬 땅콩을 뿌려낸 샐러드로 인도네시아 자바의 전통적인 요리이다. 열대 과일과 야채로 만든 샐러드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인기 있는 요리로, 정확한 기원은 밝혀진 바가 없으나 인도네시아 자바(Java)지역에서 예전부터 먹었던 전통적인 샐러드이다. 인도네시아어로는 ‘루작(Rujak)’이라고 하고, 말레이어로는 ‘로작(Rojak)’이라 하는데, 암바렐라, 자바 사과, 그린 망고, 파인애플 같은 신맛이 나는 열대 과일과 히카마, 오이, 시금치, 튀긴 두부, 구워 으깬 땅콩과 같은 채소와 과일을 주재료로 하여 만든다. 지역에 따라 고기나 해산물도 사용된다. 바다에 가까운 지역은 해산물을 재료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의 루작 '루작 부아(Rujak buah)'는 작은 종 모양에 바삭한 식감과 달콤한 맛을 가진 말레이시아 과일인 잠부에어(jambu air), 파인애플, 그린 망고, 암바렐라 등이 주재료로 하여 팜 슈거, 새우 젓갈, 타마린드, 고추를 첨가하여 만든 달콤하고 매콤한 맛의 소스를 넣어 만든 루작이다. '루작 베벡(Rujak bebek)'은 루작 부아와 무척 유사하나 과일과 소스를 한데 모아 으깨어 먹는 특징을 갖는다. '루작 주히(Rujak juhi)'는 소금에 절인 오징어와 생선으로 속을 채워 튀긴 두부와 감자, 오이

톨레도 역사도시

톨레도 역사도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3가지 색채가 깃들어있는 도시로 로마시대부터 16세기까지 수도였다. 198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톨레도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70킬로미터(km) 거리에 있는 인구 6만 여 명의 작은 도시로, 마드리드가 수도가 되기 전 1천 여 년 동안 스페인의 중심지였다.  도시는 로마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서고트 왕국, 이슬람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다. 삼면이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바위산 위에 건설되었으며,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고향인 카스티야-라 만차 지방 톨레도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덕분에 톨레도에는 로마시대 유물인 원형경기장부터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유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사실상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단위 면적당 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로 꼽힌다.  각종 종교 시설이나 박물관은 물론 일반 가정집까지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이 때문에 1561년 필리페 2세의 천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상실되었어도 톨레도는 여전히 스페인의 정신적인 수도로 불리고 있다. 톨레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데하르 양식 건축물이다. 무데하르는 이슬람 지배가 끝난 뒤에도 스페인에서 살았던 이슬람교도들을 일컫는 말이며, 무데하르 양식이란 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과 서구 문화가 결합된 건축 양식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스페인 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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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우기

측우기

조선 세종 때 강수량을 측정하기 위해 제작된 기구.
조선에서는 농사를 짓는 데 중요한 강수량을 측정하는 것이 각 도의 감사(監司)들에게도 업무의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측정 기준이 통일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고, 기후 관측을 담당하던 서운관(書雲觀)에서는 강수량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연구하였다. 《세종실록》에는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 간 푼수를 땅을 파고 보았다. 그러나 비가 온 푼수를 정확히 알지 못했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 궁중(宮中)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다”(세종 23년 4월 29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세자이던 문종 이향(李珦)도 강수량을 측정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러한 연구를 배경으로 1441년(세종 23) 음력 8월 18일에 호조의 건의로 측우기가 제작되었다. 당시 호조는 서운관에 대(臺)를 짓고, 길이 2척, 지름 8촌이 되는 그릇을 쇠로 만들어서 대 위에 올려놓고 서운관 관원으로 하여금 빗물의 양을 측정해 보고하게 하자고 건의하였다. 아울러 마전교(馬前橋) 서쪽과 한강변의 암석에 수량을 측정할 수 있는 푯말을 세워 도승(渡丞)으로 하여금 수량의 변화를 측정해 호조에 보고하게 했으며, 각 고을에서도 자기(磁器)나 와기(瓦器)로 관청 뜰에 측우기를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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