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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신민화정책

황국신민화정책

일본이 한국식민통치 제3기(만주사변 이후부터 일본 패망기까지)에 적용한 이념통치정책이다. 대륙침략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수행하였던 일본은 이 시기에, 가장 극도에 달하는 탄압정책을 실시하였다. 이 정책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물자와 인력의 수탈정책이었으며, 나아 일본의 한국 식민통치 시기는 3기로 나눌 수 있다. 한국병탄에서 31운동까지의 제 1기(1910 ~ 1919), 3·1운동 이후부터 만주사변 전까지의 제 2기(1919 ~ 1931), 그리고 제 3기에 해당하는 시기가 1931년 만주사변 이후부터 일제의 패망기인 1945년 8월 14일까지이다. 제 3기는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로, 일본은 만주와 중국 본토 등 대륙침략(중일전쟁 1937년)을 본격화하였다. 나아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주역이 되었으며 전쟁은 극도로 치달았다. 이 시기에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는 가장 극도에 달하는 탄압정책을 적용하게 된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전쟁물자를 공급하는 군수물자 보급창화(補給廠化)하고 나아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여 아예 일본민족에 통합하려는 민족말살정책(民族抹殺政策)을 추진하였다.   1936년에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그 전 총독시대부터 실시해온 내선융화(內鮮融和)정책을 보다 강화하고, 선만일여(鮮滿一如), 일시동인(日視同人) 등의 민족말살 정책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민족말살정책을 위해 밖으로 내세운 정강이 황국신민화정책(皇國臣民化政策)이었다.   황국신민화정책은 한국인을 일본 천황의 신민(신하된 백성)으로 만드는 일종의 민족말살정책이다. 이를 위해 1면(面) 1신사(神社) 정책으

파코라

파코라

야채나 치즈 등을 병아리콩가루로 만든 반죽에 담가 작은 덩어리로 튀겨낸 음식으로, 인도의 요리이다. 야채나 치즈를 반죽에 담가 기름에 튀겨낸 음식이다. 인도 전역에서 인기 있는 요리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에서도 즐겨 먹는다. ‘파코다(Pakoda)’, ‘파코디(Pakodi)’, ‘바지야(Bhajiya)’, ‘바지(Bhaji)’, ‘포나코(Ponako)’라고도 한다. 요리의 주재료로는 양파, 가지, 감자, 시금치, 플랜틴 바나나, 콜리플라워, 토마토, 칠리 고추와 같은 야채가 쓰이며 파니르와 같은 치즈나 견과류, 고기 등도 사용된다. 요리는 위와 같은 재료들을 잘게 잘라 병아리콩 반죽을 묻혀 기름에 튀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 중 가장 대중적인 파코라는 양파로 만든 ‘피아즈 파코라(Pyaaz pakora)’ 와 감자로 만든 ‘알루 파코라(Aloo pakora)’ 이다. 파코라는 에피타이저나 간식으로 즐겨 먹으며, 서양의 인도 레스토랑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처트니를 곁들여 먹는다. 조리법 병아리콩가루, 고춧가루, 가람 마살라(garam masala: 매운맛이 강한 마살라로, 서아시아에서 즐겨 쓰이는 혼합 향신료), 코리앤더를 섞은 다음 물을 넣어 반죽을 만든다. 껍질을 제거한 감자, 가지, 콜리플라워를 작게 자르고 양파도 슬라이스 하여 준비한다. 손질한 야채를 앞서 만든 반죽에 담가 고루 버무린

부르고스 대성당

부르고스 대성당

스페인의 부르고스주에 있는 성당으로, 프랑스의 고딕 양식이 스페인에 융합된 훌륭한 사례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1984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스페인(에스파냐)의 카스티야이레온(Castilla y Leon) 자치지방에 속한 부르고스주에 있는 고딕식 성당이다.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기 위하여 건축된 것으로, 1221년 카스티야왕국의 페르난도 3세(Ferdinand III) 통치 기간에 마우리시오(Mauricio) 주교가 주도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다. 1293년 가장 중요한 첫 단계 공사가 완성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5세기 중반에 재개된 뒤로 100년 이상 지속되어 1567년에 완공되었다. 뛰어난 건축 구조와 성화(聖畵), 성가대석, 제단 장식벽,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예술 작품과 독특한 소장품 등 고딕 예술의 역사가 집약된 건축물로서 이후의 건축 및 조형 예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지정된 면적은 1.03㏊이며, 주변의 완충지역(Buffer zone) 면적은 78㏊이다. 지정된 면적에 포함되는 대성당은 본당 건물과 회랑 및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 평면도는 라틴 십자가 모양에 삼랑식 신랑(三廊式身廊)과 단랑식 수랑(單廊式袖廊), 주보랑(周步廊) 그리고 방사상 제실(放射狀祭室)이 있는 내진(內陣)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랑과 수랑이 교차하는 네 구석에는 거대한 원주(圓柱)가 서 있어 팔각형의 대탑(大塔)을 지탱하고 있다.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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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영조

조선의 제21대 왕(재위 1724~1776). 탕평정책을 시행하여 붕당의 대립을 완화하였고 여러 차례 사치풍조 금단의 조치를 내렸다. 《농가집성》을 보급하고 균역법을 시행하였으며 청계천을 준설하고 신문고를 설치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휘(諱) 금(昑). 자 광숙(光叔). 숙종이 양성(養性)이라는 헌호(軒號)를 내렸다.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 1699년(숙종 25) 6세 때 연잉군(延礽  君)에 봉해지고, 1721년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1704년(숙종 30) 10세 때 맞은 군수 서종제(徐宗悌)의 딸이 첫 왕비 정성왕후(貞聖王后)이고, 1757년(영조 33) 왕후의 승하로 1759년에 김한구(金漢耉)의 딸 정순왕후(貞純王后)를 계비로 맞았다. 1721년 왕세제 책봉은 경종이 숙종을 이어 즉위한 그 해에 정언 이정소(李廷熽)가 왕이 건강이 좋지 않고 아들이 없는 것을 이유로 그를 왕세제로 책봉할 것을 먼저발의하고,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좌의정 이건명(李健命) 중추부판사 조태채(趙泰采), 중추부영사 이이명(李頤命) 등 이른바 노론 4대신들이 인원왕후(仁元王后) 김대비(숙종의 계비)의 지원을 요청하면서 추진하였다. 이에 대해 소론측은 우의정 조태구(趙泰耉)를 필두로 시기상조론을 펴 반대했으나 노론의 뜻대로 책봉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후 노론이 대리청정으로까지 몰아가자 소론이 역공의 명분을 얻어 이 일에 앞장섰던 노론 4대신을 탄핵하여 귀양보냈다(신축옥사). 이듬해 1722년에 소론은 기세를 모아 영수 김일경(金一鏡) 등이 남인 목호룡(睦虎龍) 등을 시켜 노론이 삼수역(三守逆:경종을 시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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