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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말 아타튀르크

케말 아타튀르크

튀르키예의 개혁가이자 초대 대통령. 세브르조약에 대한 민족독립전쟁을 일으켜 그리스군을 격퇴하였으며 정치개혁으로 술탄제도를 폐지하고 연합국과 로잔조약을 체결하였다. 공화제를 선포하고 대통령이 되었으며 정당정치를 확립하였다. 본명은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이며 케말 파샤라고도 한다. 아타튀르크란 '튀르키예의 아버지'를 뜻하는데, 1934년에 대국민의회(튀르키예의 국회)에서 증정한 칭호이며, 파샤는 군사령관·고급관료에게 보내지는 칭호이다. 무스타파 케말은 1881년 3월 12일 오늘날의 그리스 살로니카에서 튀르키예 세관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2세부터 군사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04년 이스탄불에 있는 하비에르 육군 참모 대학에 입교했다. 그는 군사학 뿐만 아니라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수학교사로부터 완벽함을 뜻하는 ‘케말’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것을 자신의 정식 이름으로 사용했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군사교육을 받는 동안 청년튀르크당(Young Turks) 운동에 열성적으로 가담했다. 이 운동은 튀르키예의 청년장교들로 구성된 정치단체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전제왕정인 술탄제를 폐지하고 튀르키예 민족주의와 독립, 그리고 민주주의를 추진하는 급진적이며 혁명적인 정치 운동이었다. 이러한 정치운동에 가담했던 무스타파 케말은 고급장교임에도 불구하고, 190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변방지역인 시리아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11~12년 이탈리아-튀르키예 전쟁 때 소령 계급으로 참전했으며, 소피아의 주재무관에서 북아프리카의 벵가지 방면으로 전속되어 활약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라고 할

풀포 마리나도

풀포 마리나도

소금 등에 절여낸 문어 요리로, 스페인의 전채 요리인 타파스에 해당한다. 작은 크기의 문어를 물에 삶아 한 입 크기로 자른 뒤, 소금, 식초, 오일 등과 함께 담아 숙성시킨 요리이다. 스페인어로 ‘풀포(Pulpo)’는 ‘문어’를, ‘마리나도(Marinado)’는 ‘소금 등에 절인 요리’를 뜻한다. 문어는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갈리시아 지방의 인기 있는 식재료이며, 이 문어를 활용하여 만든 풀포 마리나도는 갈리시아 지방의 전형적인 타파스이기도 하다. 요리에 활용되는 문어는 크기가 작은 것을 활용하는 게 좋은데, 이는 크기가 큰 문어의 경우 식감이 질겨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요리는 전통적으로 금속 소재의 가마솥(metal cauldron)에서 조리되며, 지역 축제에서 즐겨 등장하는 요리이기도 하다. 조리법 문어는 크기가 작은 것으로 준비하여 내장, 눈 등을 제거한 뒤 깨끗하게 씻어 놓는다. 큰 냄비에 물을 채워 끓인다. 문어를 물 속에 넣어 살짝 데친다. 이 과정을 두 번 더 반복한 뒤, 문어를 건져 접시에 옮겨 놓는다. 냄비에 월계수 잎, 껍질을 벗긴 양파, 후추, 파슬리, 소금을 넣고 물을 한 번 더 끓여낸다. 문어를 다시 냄비에 넣고 불을 줄인 뒤 뚜껑을 덮고 끓이는데, 삶는 시간은 문어의 크기에 비례하여 최소 1시간 30분에서 최대 3시간가량 끓여낸다. 삶은 문어는 건져

코르도바 역사지구

코르도바 역사지구

코르도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의 한 도시로서 8세기 무렵 이 곳을 점령한 아랍 무슬림에 의해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 오늘날 약 300여개의 모스크와 수많은 왕궁을 비롯한 유적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시대와 문화의 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 장소로서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코르도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과달키비르 강변에 위치한 도시로서, 로마와 비잔틴 제국 시기부터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지였으며, 8세기에 후기 우마이야 칼리프조(AD 756~1036)가 이 곳에 수도를 정하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929년 즉위한 압둘 라흐만 3세때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당시의 인구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1984년 12월 17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코르도바 역사지구에는 로마시대부터 16세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걸친 문화적 유산이 공존하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가장 유명한 유적으로는 스페인어로 메스키타(Mezquita)라고 불리는 우마이야 대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는 우마이야 가문의 칼리프 압둘 라흐만 1세(재위 756~788)에 의해 서고트족 왕국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 786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계속 확장 개축되었다. 모스크의 위치는 로마시대에는 야누스 신전이, 서고트족 통치기에는 산비센테 성당이 있던 종교적 장소로서, 페르시아의 건축가들이 이 모스크를 지을 때 기존 건축물의 석재를 그대로 사용했다. 다주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목조 기둥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아치의 2단 구조가 인상적이다.  초기에는 가로세로로 각각 11열씩 아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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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신군부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제5공화국의 권력을 장악한 군인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군부와 대비하여 신군부(新軍部)라고 부른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정변(5·16군사정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朴正熙)는 정변 과정에서 김종필(金鍾泌) 등이 포함된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들을 등용하였다. 군사 정변이 성공하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박정희는 정권의 요직에 포진한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들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육군사관학교 11기가 중심이었던 칠성회(七星會)와 접촉하게 되었다. 칠성회는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정호용(鄭鎬溶) 등이 포함되었는데, 박정희는 이 칠성회를 통해 육군사관학교 8기를 견제하였다. 이후 칠성회는 영남 출신의 군인들을 포섭하여 일심회(一心會)로 개편되었고, 최종적으로 하나회로 자리 잡았다. 하나회는 조직 규모를 확대하여 육군사관학교의 기수마다 회원을 두었고, 군부 및 정계와 접촉하기 시작하였다.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金載圭)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10·26사건), 최규하(崔圭夏)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계엄이 선포되었으며 계엄사령관으로 정승화(鄭昇和)가 임명되었다. 하나회의 리더였던 전두환은 군의 정치 개입 정도를 두고 소극적이었던 정승화와 노선 갈등을 벌였고, 결국 1979년 12월 12일 군대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켰다(12·12사태). 전두환은 정승화가 김재규에게 뇌물을 받았고, 10·26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당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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