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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불교 사원군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군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욕야카르타 북쪽에 있는 불교유적.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많은 탑이 집합체를 이루었고 전체의 모양 또한 탑의 형상을 하고 있다. 천연의 구릉 위에 안산암(安山岩) 암석을 쌓아 올려서 구축한 것으로, 면적은 약 1만 2000m2, 높이는 약 31.5m이며 2중의 기단(基壇) 위에 방형(方形)으로 5층, 원형으로 3층을 건조하여 8층으로 하였고, 그 정상에 커다란 종(鐘) 모양의 탑을 덮어씌운 구조로 되어 있다. 불교세계의 어디에서도 그 유례(類例)를 찾아볼 수 없는 장대하고 복잡한 건축물이다. 불상(佛像) ·부조(浮彫) ·장식의 조각은 실로 훌륭하며, 그 수법도 매우 섬세하여 밀교(密敎)계 만다라(曼茶羅)와 닮은 고안법도 엿보인다. 거대한 화산으로 둘러싸인 쿠두 평원의 중앙에 위치하며 풍경이 아름답기로도 알려져 있다. 건립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8세기 전반에 중부 자바에서 번영한 샤일렌드라 불교왕조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세기 중엽에 정치 ·문화의 중심이 서부 자바로 옮겨가면서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1814년 영국의 총독이었던 T.라플스 통치시대에 그의 명을 받은 유럽인에 의하여 발견되어 반쯤 매몰된 탑이 발굴되었고, 그 조사연구가 진행되었다. 벽면에 석가모니의 일대기가 부조로 조각되어 있으며, 이 건조물의 보존운동이 유네스코의 지원하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무할레비

무할레비

우유, 쌀가루, 설탕 등을 넣어 끓여낸 뒤 차갑게 식힌 푸딩으로, 중동 지역의 전통적인 디저트이다. 우유 푸딩이다. 중동 지역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통적이고 인기 있는 디저트이며, 라마단 기간에 제공되는 음식 중 하나로 레스토랑의 디저트로도 즐겨 제공된다. 튀르키예와 이라크에서는 ‘무할레비(Muhallebi)’라고 하며, 레바논, 시리아에서는 ‘말라비(Malabi)’라고 한다. 이집트식 변형은 ‘마할라비아(mahalabia)’라고 한다. 사산 왕조 출신의 페르시아 요리사에 의해 아랍 요리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7세기 아즈드족 출신의 아랍의 장군인 알무할랍 이븐 아비 수프라(Al-Muhallab ibn Abi Sufra)가 이 요리를 무척 좋아한 탓에 그의 이름을 따 무할레비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오스만제국에서 즐겨 먹던 디저트이기도 하며, 술탄이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자 공개적인 축하 행사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이기도 하였다. 전통적으로 쉬비에(sübye)라 하는 쪼개진 쌀알을 활용하여 걸쭉하게 만들어지나 오늘날에는 간단하게 쌀가루나 옥수수가루를 활용하여 만든다.  무할레비는 오래된 역사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가 가능하며 이는 크게 크게 세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첫 번째는 우유에 으깬 쌀을 첨가하여 만드는 것으로 이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일반적이면서 인기 있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우유에 달걀을 첨가하여 만드는 것으로 이는 일종의 커스터드

서원

서원

조선 중기 이후 명현(明賢)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사설기관(私設機關). 서원의 명칭은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궁중에 있던 서적(書籍)의 편수처(編修處)이던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집현전서원(集賢殿書院)에서 유래한 것인데, 송나라 때 지방의 사숙(私塾)에 조정(朝廷)에서 서원이라는 이름을 준 데서 학교의 명칭이 되어 수양(睢陽)·석고(石鼓)·악록(嶽麓)·백록동(白鹿洞) 등의 4대서원이 생겼으며, 특히 주자(朱子)가 강론(講論)을 하던 백록동서원은 유명하였다. 그 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와서 이를 보고 중국 백록동 고사(古事)처럼 조정에서 사액(賜額)과 전토(田土)를 주도록 건의함에 따라 명종은 1550년(명종 5) 이를 권장하는 뜻에서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고 친필로 쓴 액(額:간판)과 서적을 하사하고 학전(學田)·노비(奴婢)를 급부(給付)하면서 이들 토지와 노비에 대한 면세(免稅)·면역(免役)의 특권을 내려 이것이 사액서원(賜額書院)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서원의 설치는 전국에 미쳐 명종 이전에 설립된 것이 29개, 선조 때는 124개에 이르렀고, 당쟁이 극심했던 숙종 때 설치한 것만 300여 개소에 이르러 1도에 80~90개의 서원이 세워졌으며, 국가 공인(公認)의 절차인 사액(賜額)의 청원에 따라 사액을 내린 서원도 늘어나 숙종 때만 해도 130여 개소에 이르렀다. 초기의 서원은 인재를 키우고 선현·향현을 제사지내며 유교적 향촌 질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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