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톈안먼사건

톈안먼사건

(1)중국 마오쩌둥[毛澤東] 체제 말기인 1976년 4월에 있었던 대중반란.(2) 1989년 6월 4일 미명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계엄군을 동원하여 탱크와 장갑차로 해산시키면서 발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 ⑴ 중국 문화대혁명 이래의 마오쩌둥 사상 절대화의 풍조와 마오쩌둥 가부장 체제에 대한 중국 민중의 저항을 나타낸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사망하자, 중국에서는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의 길로 나아간 實權派)’비판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따라서, 오랜 기간 중국의 혁명과 건설 및 국제적 무대에서의 중국의 위신증대에 기여한 저우언라이 총리를 추도하려던 중국 민중의 의지는 꺾이고, 다시 극좌적 조류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1976년 4월 4일 청명절(淸明節)에, 베이징[北京]의 민중은 손에 손에 화환과 플래카드를 들고 톈안먼 광장에 있는 인민 영웅기념비를 향해 시위행진하였다. 저우언라이의 자필 비문이 새겨져 있는 기념비는 민중의 화환에 의해 제단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베이징시 당국과 관헌은 이 기념비에 바친 화환을 모두 철거하였고, 다음날인 5일 격노한 대중은 반란을 일으켜 건물과 자동차 등에 방화를 하는 등 일대 소요가 야기되었다. 플래카드에는, 후에 ‘4인방’이라 하여 체포된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靑]과 측근인 야오원위안[姚文元] 등을 비판하는 시가 많이 게재되어 분명하게 마오쩌둥 체제에 대한 반역의 의사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 사건은 공안당국과 군에 의해 반혁명사건으로 철저히 탄압되였으며, 덩샤오핑[鄧小平:당시 중국공산당 부주석 ·부총리]에게 책임을 물

까리아얌

까리아얌

닭고기에 카레 페이스트, 코코넛 밀크, 각종 향신료 등을 첨가하여 만든 카레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인기 있는 요리이다. 닭고기를 주재료로 하여 만든 카레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인기 있는 요리이며, 인도네시아어로‘ 까리(Kari)’는 카레를, ‘아얌(Ayam)’은 닭을 의미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토기냄비에 까리아얌을 끓여낸다. 닭고기 이외의 재료로는 양파, 샬롯, 마늘, 토마토, 코코넛 밀크, 기(ghee), 감자, 카레 파우더, 팔각, 시나몬, 카레 잎(curry leaves), 다운 판단, 레몬그라스, 칠리고추, 커민, 터메릭, 회향씨 등이 쓰인다. 조리법 닭을 깨끗이 씻어 조각낸다. 푸드 프로세서에 샬롯, 생강, 마늘, 커리 파우더, 고춧가루, 오일, 물 약간을 넣고 갈아서 카레 페이스트를 만든다. 껍질을 벗긴 감자를 물에 넣고 끓인다. 감자가 익으면 건져두고 감자를 삶은 물은 따로 보관해 놓는다. 또 다른 냄비에 오일을 두르고 시나몬과 팔각을 넣어 볶다가 앞서 만들어 둔 카레 페이스트를 넣고 함께 볶는다. 여기에 손질해 둔 닭고기를 넣고 고기의 겉면이 갈색을 띠도록 구운 다음 감자 삶은 물을 부어 젓는다. 코코넛 밀크, 피시소스, 카레 잎을 첨가하여 섞다가 레몬그라스를 넣고 뚜껑을 덮어 약 20분간 끓인다. 마지막으로 삶은 감자를 넣고 닭고기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조린다. 완성된 까리아얌을 그릇에

안티과 과테말라

안티과 과테말라

과테말라에 있는 사카테페케스주(州)의 주도(州都). 옛 안티과, 과거의 수도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 시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로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인근에 아구아, 아카테난고, 푸에고 등 세 개의 화산이 있어 지진과 홍수 피해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안티과 과테말라는 16세기 중반 에스파냐에 의해 건설되어 200여 년간 과테말라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다. 전성기는 17세기로 인구 7만에 중앙아메리카 예술 학문 중심지였다. 하지만 1773년 두 차례의 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자 25km 떨어진 곳으로 수도를 옮겼는데, 그곳이 바로 현재의 과테말라 시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수도를 ‘옛 과테말라’라는 뜻의 안티과 과테말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간단히 줄여서 안티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300년 전 식민지 개척시대의 향기 인구 3만 명의 안티과는 쉬엄쉬엄 걸어도 하루가 안 되어 다 볼 수 있는 작은 규모지만 옛 왕국의 수도답게 곳곳에 유적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지진으로 무너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과거의 건축물 사이를 걷노라면 300년 전 식민지 개척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 공원 근처에는 시청사로 쓰이는 과거 총독부 건물, 아직도 복원공사 중인 대성당, 아름

슬라이드 바로가기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