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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시대

무로마치 시대

1336년 일본의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겐무정권[建武政權]을 쓰러뜨리고 정권을 잡은 때부터 1573년 아시카가막부[足利幕府]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멸망될 때까지 약 240년간의 시대. 교토[京都] 무로마치[室町]에 궁전을 세웠기 때문에 통상 무로마치시대라고 한다.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지고 60년간 남북조(南北朝)로 갈라져 싸웠던 분쟁이 종말을 고하자 무로마치 막부 아시카가씨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오닌[應仁]의 난이 일어나 무로마치 막부가 패망하고 센고쿠 시대로 접어드는 시기까지를 무로마치시대라고 한다. 전대(前代)인 가마쿠라[鎌倉]시대까지는 천황을 받드는 구게[公家] 정권과 막부 정권이 양립하는 2원정치였으나 아시카가시대는 구게 정권을 물리치고 무가(武家)에 의한 단독정권을 수립한 것이 특징이다. 정치적으로는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의 친정[親政]을 내세우는 남조에 대하여 고묘천황[光明天皇]을 옹립하고(북조) 남조를 굴복시킨 권력의 확립기, 최성기, 쇠퇴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무로마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남북조를 통일하면서 막부의 세력이 강화되었고 쇼군의 정치적 지위는 천황을 능가하였다. 요시미쓰 뒤를 이어 요시모치[義持]와 요시노리[義敎]가 쇼군으로 등장하면서 막부는 점차 쇠퇴하였다. 사회적으로는 장원(莊園) 제도가 붕괴되고 지방의 슈고다이묘[守護大名]가 점차 세력을 형성하여 각자의 영지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이 이어졌다. 각처에서 세력을 키워온 슈고다이묘들의 세력 균형 위에 유지되다가 1467년 유력한 무사였던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야마나 소젠이 싸운 오닌[應人

카야 토스트

카야 토스트

바삭하게 구운 빵 사이에 카야를 발라낸 샌드위치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즐겨 먹는다. 구운 빵 사이에 카야를 발라낸 샌드위치이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즐겨 먹는 음식으로 특히 아침 식사로 즐겨 먹는다. 이때 주재료인 카야(kaya)는 달걀, 코코넛 밀크, 설탕, 판단 잎을 첨가하여 만든 달콤한 맛의 코코넛 밀크 잼을 말한다. 카야 토스트는 영국 선박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하이난족에 의해 유래한 음식으로 추정된다. 하이난족들이 영국령 말라야(British Malaya: 18~20세기 사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 반도와 주변 섬을 칭하는 옛 명칭)에 정착하게 되면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영국식 과일잼 대신 카야를 토스트에 발라 판매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카야토스트는 보통 카야와 함께 얇게 슬라이스한 차가운 버터 한 조각을 곁들여 만든다. 활용되는 빵은 바삭바삭한 식감을 가져야 하는데, 전통적으로는 숯불을 활용하여 구웠으나, 오늘날에는 간단히 토스터에 구운 빵을 활용한다. 카야 토스트의 변형으로 바삭한 빵 대신 프렌치토스트를 쓸 수 있으며, 속재료로 피넛버터나 치즈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카야 토스트는 주로 반숙 달걀과 커피 혹은 차를 곁들여 아침 식사로 먹으며, 간단한 간식으로도 즐겨 먹는다. 조리법 빵은 바삭하게 구워 놓

프로뱅 지역의 중세도시 상가지역

프로뱅 지역의 중세도시 상가지역

11~13세기 사이에 발달했던 중세 무역도시이자 요새 도시로 모직물 산업으로 유명했다. 중세에 만들어진 거주지 건물, 무역 창고, 종교 건축물, 요새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드프랑스 지방과 샹파뉴 지방 사이에 위치한 프로뱅(Provins)은 예전에는 샹파뉴 백작(Counts of Champagne)령에 속해있던 요새화된 중세도시였다. 12~13세기 동안 수 많은 상인들이 거래를 위해 머물렀던 곳으로 경제적 활기가 넘쳐났다. 이곳에서 열렸던 샹파뉴지방의 시장은 북유럽과 지중해지방을 연결시켰으며 지방 산업이었던 모직물 산업을 크게 확장 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직물을 팔려는 플랑드르(Flanders) 상인들과 사려는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곳시장에서 만났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11~15세기 동안 지어진 창고, 요새, 교회, 집, 성탑과 같은 중세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2001년 프로뱅은 중세 주요 무역도시이자 요새도시로서의 그 가치와 훌륭한 보존 상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World Heritage)로 선정되었다.     11세기 초 샹파뉴 백작은 그 누구보다 빨리 장거리 무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영지 내에 있던 도시들의 지리적 이점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로뱅은 주요한 교역로들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곳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열린 시장은 항상 성황을 이루었고 12~13세기에 가서는 유럽의 주요 무역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지리적 이점만이 프로뱅 지방에 경제적 활기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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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청명

24절기 중 하나로 춘분과 곡우 사이에 든다. 이날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지기 때문에 청명이라고 한다. 농가에서는 이 무렵 바쁜 농사철에 들어간다. 24절기 가운데 다섯째에 해당하며,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든다. 음력으로는 3월이지만,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이므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15˚에 있을 때이다. 보통 한식(寒食)의 하루 전날이거나 한식과 같은 날이 많고, 오늘날의 식목일(植木日)과도 겹치는 경우가 흔하다.청명일(淸明日)의 준말로, 이때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지기 때문에 청명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청명에서 곡우 이전까지의 15일 동안을 다시 3후(三候)로 나누어 1후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2후에는 들쥐 대신 종다리가 나타나며, 3후에 비로소 무지개가 보인다고 하였다.농가에서는 이 무렵부터 바쁜 농사철에 들어가 논밭의 가래질, 논밭둑 다지기, 보리밭 매기, 채소 파종 등을 시작하느라 일손 구하기가 힘들다. 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에 따르면, ‘이 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로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친 뒤 다시 각지의 관청에 나누어 준다’고 하였다. 이 불을 다음날인 한식에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 바로 한식이다.이 무렵을 전후해 찹쌀로 빚은 술을 청명주(淸明酒)라 하여 담근 지 7일 뒤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신다. 또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그기도 하고, 서해에서는 곡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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