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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시국

바티칸시국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에 있는 교황청이 통치하는 가톨릭 국가이다. 인구와 영토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1929년 2월 11일 이탈리아왕국과 교황청 간에 체결된 라테란조약(Lateran Treaty)에 의해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 되었다. 교황청이 주권을 가지는 독립 도시국가로, '바티칸시(Vatican City)' 혹은 줄여서 '바티칸(Vatican)'이라고도 한다. 명칭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전해져온 오래된 말로, 테베레강 옆에 위치한 '바티칸 언덕'을 뜻하는 라틴어 '몬스 바티카누스(Mons Vaticanus)'에서 유래한다.영토는 로마 외곽의 카스텔간돌포와 대주교과 성당들을 제외하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바티칸궁전과 산피에트로대성당을 비롯해 0.44㎢에 불과하다. 전세계 로마가톨릭교회와 교구를 통괄하는 가톨릭교회의 최고 통치기관인 교황청이 위치해 있어 외교적으로는 '성좌(Holy See 혹은 Santa Sede)'라고 불린다. 바티칸시국은 1929년 라테란(Laterano) 협정을 통해 이탈리아로부터 독립된 물리적 공간의 도시국가를 의미하며, '교황청' 혹은 '성좌'는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영적 국가를 의미한다. 바티칸시국의 주권이 교황청의 수장인 교황에게 있기 때문에 바티칸시국과 교황청은 교황에 의해 사실상 통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바티칸시국(일러스트) (항목 편집 시, 수정·삭제 금지)

올리비에 샐러드

올리비에 샐러드

삶은 달걀, 감자, 완두콩 등 다양한 야채를 작게 잘라 마요네즈에 버무려낸 샐러드로, 러시아의 전통적이고 인기 있는 요리이다. 각종 야채와 삶은 달걀 등을 작게 잘라 마요네즈에 버무린 샐러드이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샐러드 요리로 ‘러시안 샐러드(Russian salad)’라고도 부른다. 요리는 새해 전야에 먹는 샐러드로 잘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의 축제 요리로도 자주 등장한다. 또한 영어권 국가와 유럽 등에서도 즐겨 먹는다. 보통 달걀, 감자, 완두콩이 기본재료로 사용되며, 그밖에 소시지, 피클, 당근, 고기, 양상추, 토마토, 사과 등 다양한 재료가 취향에 따라 첨가될 수 있다. 요리에 고기류를 첨가할 경우 보통 소시지를 사용하며 간혹 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한편 샐러드에 달걀, 고기, 감자, 당근 등을 첨가할 때는 수분을 없애기 위해 재료를 한번 익힌 다음 식혀서 요리에 사용하여야 하며 재료들은 가능한 한 작게 잘라서 써야 한다. 기원과 역사 올리비에 샐러드는 1860년대 모스크바의 프랑스 레스토랑인 에르미타주(Hermitage)의 요리사인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요리는 본래 들꿩, 송아지 혀, 캐비어, 피클, 케이퍼, 달걀, 양상추를 샐러드 재료로, 마요네즈를 드레싱으로 내어놓은 음식이었으나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며 들꿩, 송아지 혀, 캐

박물관섬

박물관섬

독일 베를린에 있는 슈프레 섬의 북쪽 부분으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다섯 곳의 박물관이 이곳에 위치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독일 베를린의 역사지구에 포함되어 있는 슈프레 섬(Spreeinsel)의 북쪽 끝을 지칭하며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섯 개의 박물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 섬'이라는 뜻의 독일어 뮤제움스인젤(Museumsinsel)로 불리며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 섬에 박물관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으로, 첫 번째 박물관인 알테스뮤제움(Altes Museum)은 1797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Friedrich Wilhelm II.)가 고고학자이자 미술 교수였던 알로이스 히르트(Aloys Hirt)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설립이 결정되었으며, 카를 프리드리히 슁켈(Karl Friedrich Schinkel)의 설계로 1823년부터 1830년에 걸쳐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외관이 인상적인 알테스뮤제움에는 베를린 시에서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시대 유물들과 고예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세계대전 당시 건물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나 1966년에 복구되었다. 알테스뮤제움의 북쪽에는 노이에스뮤제움(Neues Museum)이 있다. 알테스뮤제움을 건축한 슁켈의 제자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튈러(Friedrich August Stüler)의 설계로 1843년에 지어지기 시작하여 1855년에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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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

창씨개명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의 성명(姓名)을 일본식의 씨(氏)와 이름으로 바꾸게 한 일. 창씨개명의 배경 1931년 9월 일본은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키며 중국의 만주(둥베이(東北))를 장악하였고, 국제연맹의 철수 권고를 무시하며 전시체제로 돌입하였다. 1937년 7월에는 중일전쟁(中日戰爭)을 일으켜 전선을 대규모로 확대하였다. 이에 1938년 4월 조선총독부는 인적·물적 자원을 통제하는 국가총동원법(國家總動員法)을 시행하여 조선을 전시 총동원 체제로 운영하였다. 또한 사회 전반을 통제하기 위하여 국민총력운동(國民總力運動)을 벌여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내선일체(內鮮一體)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조선을 천황 중심의 지배체제에 확실하게 편입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 창씨개명이었다. 창씨개명의 내용 본래 일본은 국권침탈 이후 1912년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시행하여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성명(姓名)을 등록하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순 한글 이름, 일본식의 이름을 짓는 것 등은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원활한 전쟁 수행을 위하여 조선을 일본에 동화시키기로 하면서 정책이 바뀌었다. 일본에서 씨(氏, 집안의 이름)는 혈족과는 관계없이 천황이 부여하는 것으로, 창씨(創氏, 씨의 창설)는 곧 일본식 가족제도를 통한 천황 중심 지배체제로의 편입을 의미하였다. 또한 일본은 창씨가 중국에서 기원한 조선의 성(姓)을 조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함과 동시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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