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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

호찌민

베트남의 혁명가·정치가, 구(舊)베트남민주공화국 초대 대통령. 베르사유회의에 출석하여 '베트남 인민의 8항목의 요구'를 제출하여 유명해졌다. 이후 혁명운동을 계속하며 베트남의 독립 총봉기를 주도해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본명은 응웬 닷 탕(Nguyen Tat Thanh)이지만 어릴적 이름은 응웬 싱 콘이라고 불렀다. 호치민은 가명과 필명이 160여개가 되었다.그가 태어난 곳은 베트남의 중부지방이며 행정구역은 응헤안주에 있는 호앙쭈(Hoang Tru)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훼이서 북쪽으로 360km떨어진 오지였으며 주변환경은 혹독했다. 그의 아버지는 농민출신으로 평범한 지식인이였다. 그의 아버지가 훼에서 관직에 올랐지만 그해 어머니가 사망하였고 그의 아버지도 관직에서 오래가지 못해 면직되었다(1929년 사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응웬 닷 탕의 생활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1911년 발전된 서구의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의 6000톤급 증기선(船) 아미랄 라투슈 트레빌호의 견습 요리사로 프랑스에 건너갔다. 1914~1919년까지는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 하인, 견습공 등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야와 민족주의적 가치관은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1919년 세계1차 대전이 끝나면서 파리에 정착하였다. 이때부터 응우옌 아이 꾸옥[阮愛國]이란 이름으로 식민지해방운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파리는 세계 식민지국가에서 건너온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중심지였다. 1919년 6월 베르사유회의에 베트남대표로 출석하여 '베트남 인민의 8항목의 요구'를 제출하

야로슬라블 역사지구

야로슬라블 역사지구

러시아의 서북부 도시 야로슬라블에 위치한 세계유산이다. 야로슬라블이 크게 번영하였던 시기인 17,18세기에 세워진 교회, 수도원, 극장, 시청 건물 등의 다양한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2005년 유네스코에 의해 그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러시아의 서부 야로슬라블주(Yaroslavl Oblast)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이 자리한 야로슬라블 주의 주도 야로슬라블(Yaroslavl)은 수도 모스크바(Moscow)에서 북동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으로 볼가 강(Volga)과 코토로슬 강(Kotorosl River)이 합류되는 지점이다. 야로슬라블은 11세기 초 로스토프(Rostov) 공국의 변경 식민지로 처음 세워진 후 점차 그 지리적 이점을 살려 주요 상업지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도로와 철로 그리고 수로가 교차되는 중요한 교통 지점이다. 13세기 로스토프 공국으로부터 독립해 자치권을 획득했으며 17세기에는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하였다. 18세기 야로슬라블은 카트린느 2세(Catherine II, Catherine the Great, 1729~1796, 재위 1762-1796)의 대규모의 도시 계획에 따라 신고전주의(Neo-classical)의 영향을 받은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 지역이 번영을 누리던 17세기에는 수많은 수도원과 교회들이 세워졌다. 건물들은 야로슬라블 형식(Yaroslavl type)으로 칭해지는 건축 방식으로 지어졌는데 붉은 벽돌로 건물을 지은 후 외부를 밝은 색 타일로 장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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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가야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하류지역에 있던 여러 국가들의 연맹 왕국 또는 그 지역에 위치한 각 국가들의 명칭. 가야에 관한 역사책으로는 고려 문종 대 금관주지사(金官州知事:김해지역에 파견된 지방관)를 지낸 문인이 저술한 《가락국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은 이를 발췌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뿐이다. 이 기록은 내용이 워낙 부족하고, 간략하기 때문에 가야사를 복원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일본서기》에도 가야의 역사가 단편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일본인들이 많이 왜곡하였으므로 사료비판이 요구된다. 가야는 문헌기록에 따라 가야(加耶·伽耶·伽倻)·가라(加羅)·가량(加良)·가락(駕洛)·구야(狗邪·拘邪)·임나(任那) 등 여러 명칭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야는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변한(弁韓) 12국에서 발전하였는데, 여기에는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접도국(接塗國)·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고순시국(古淳是國)·반로국(半路國)·악노국(樂奴國)·군미국(軍彌國)·미오야마국(彌烏邪馬國)·감로국(甘路國)·구야국(狗邪國)·주조마국(走漕馬國)·안야국(安邪國)·독로국(瀆盧國)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고자미동국은 고성, 미오야마국은 고령, 구야국은 김해, 안야국은 함안에 위치하였음이 확인되고, 나머지는 그 위치에 대해 여러 설이 분분하다. 《삼국지》가 3세기 중반의 상황을 전한 것이므로 이 시기까지 가야란 명칭은 쓰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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