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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윈스턴 처칠

영국의 정치가. 1906년 이후 자유당 내각의 통상장관·식민장관·해군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보수당에 복귀해 주류파의 유화 정책에 반대하며 영국·프랑스·소련의 동맹을 제창하였다. 세계 제 2차대전 중에 노동당과의 연립내각을 이끌고 루스벨트, 스탈린과 더불어 전쟁의 최고 정책을 지도했다. 이후 반소 진영의 선두에 섰으며 1946년 '철의 장막'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1874년 11월 30일 옥스퍼드셔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4경기병 연대에 입대, 인도로 배속되었는데 특별허가를 얻어 쿠바반란 진압작전에 참가하였다. 1898년 수단원정, 1899년 보어전쟁에 참가하여 종군기사를 신문에 발표하였다. 보어전쟁에서는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에 성공하여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1900년 보수당의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보수당의 보호관세정책에 반대하여 1904년 당적을 자유당으로 옮겼다. 1906년 이후 자유당 내각의 통상장관·식민장관·해군장관 등을 역임하였는데, 제1차 세계대전 중 다르다넬스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1915년 해군장관의 자리를 물러났다. 1917년 군수장관으로 다시 입각, 1919년 육군장관 겸 공군장관, 1921년 식민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자유당은 분열하여 쇠퇴의 길을 걸었고, 또 소련에 대한 강한 반감과 점점 열기를 더해가는 노동운동에 대한 위구심에서 보수당에 복귀하였다. 1924년 보수당 S.볼드윈 내각의 재무장관이 되어 자유무역주의를 주장하고, 영국의 파운드화(貨)를 금본위제로 복귀시켰다. 1926년 총파업 때에는 강경한 탄압정책을 주장하여 노동운동가들로부터 적대시되었다. 1929년 내각 총사퇴 후 10년간은 보수당 주류파와 견해를 달리 하였던 탓으로 1931년 거국내각에도, 193

고르메 싸브지

고르메 싸브지

고기, 허브, 강낭콩, 라임을 첨가하여 뭉근하게 끓여낸 스튜로, 이란의 전통적인 요리이다. 각종 허브를 첨가하여 만든 스튜이다. 이란의 전형적이고 인기 있는 요리이며, 아제르바이잔, 이라크에서도 즐겨 먹는다. 이란의 스튜 요리를 뜻하는 호레시(خورش)에 해당하며, 이때 페르시아어로 ‘고르메(سبزی)’는 ‘브레이즈드(braised)’를 의미하는데, 이는 음식을 기름에 살짝 익히고 물을 첨가하여 서서히 조리는 조리 방법을 뜻한다. ‘싸브지(قورمه)’는 ‘허브’를 뜻한다. 전통적으로 양고기, 소고기 혹은 송아지 고기를 첨가하여 만들며, 첨가되는 허브로는 기본적으로 파슬리, 실란트로, 호로파, 스캘리언이 있고 필수적인 향신료로는 오만 라임이 쓰인다. 요리에는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는데 일반적으로 첨가되는 붉은 강낭콩 이외에 핀토빈이나 동부콩을 첨가하여 만들기도 하고 시금치와 딜 혹은 토마토를 넣어 만들기도 한다. 고르메 싸브지는 사프란을 첨가하여 만든 밥이나 라바쉬와 같은 플랫 브레드를 곁들여 먹는다.  조리법 양고기나 쇠고기를 주사위 모양으로 자른다. 붉은 강낭콩은 하룻밤 동안 불려 놓고, 양파는 잘게 썬다. 파슬리, 실란트로는 씻어서 물기를 제거하고 잘게 자른다. 팬에 오일을 두르고 파슬리, 실란트로를 넣고 볶아서 따로 담아 놓는다. 냄비에 오일을 두르고 양파를 넣어 볶다가 고기, 터메

젤레나 호라의 성 얀 네포무츠키 순례 교회

젤레나 호라의 성 얀 네포무츠키 순례 교회

체코 젤레나 호라에 있는 18세기 교회이다. 바로크 양식에 네오고딕 양식이 더해져 독창적이라고 평가받는다. 5각형의 별 모양 건물을 10각형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1994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체코 모라비아주(州) 남부 젤레나 호라에 있는 18세기 교회이다. 젤레나 호라의 낮은 언덕 위에 세워진 5각형 별 모양 건물로 바로크 양식에 네오고딕 양식이 더해져 독창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시토회 수도원에서 체코 건축가 얀 블라제이 산티니(Jan Blazej santini)에게 의뢰하여 지은 교회이다. 1719∼1722년에 세워졌다. 1393년 순교한 성 요한 네포무크의 묘 위에 세워졌으며, 그가 죽을 때 시신 위로 5개의 별이 나타났다는 전설이 건물을 5각형으로 설계한 동기가 되었다. 10각형의 회랑이 교회를 둘러싸고 있으며, 회랑에는 5각형의 작은 예배당 5개가 있다.  교회 내부의 천장은 2단 첨두 볼트 형태이며, 천장 가운데 성 네포무크가 조각되어 있다. 주제단에는 천구(天球)가 있고, 그 주위에 천사 5명, 아기천사 3명이 있다. 천구 위에는 네포무크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천국으로 올라가는 네포무크 그림과 제단 측면의 천사 그림은 산티니의 작품이다. 1784년의 화재로 교회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축 당시의 건물은 예배당과 회랑 등이다. 1994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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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

조봉암

독립 운동가 겸 정치가. 노농총연맹조선총동맹을 조직해 문화부책으로 활약하다가 상하이에 가서 코민테른 원동부(遠東部) 조선대표에 임명되고, ML당을 조직해 활동했다. 제헌의원·초대 농림부장관이 되고 대통령에 출마하기도 했다.
본관 창녕(昌寧), 호 죽산(竹山)이다. 인천시 강화(江華)에서 1899년에 출생하였다. 강화에서 공립보통학교와 농업보습학교를 다녔고 학교를 졸업하였고 군청에서 면서기와 대서 보조원으로 일하였다. 11세 때인 1909년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김광국(金光國) 목사를 통해 민족의식과 일제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인식을 하게되었고 교회 청년단의 중심이 되어 3·1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는 주동자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 동안 복역하였다. 복역중 심한 고문과 학대에 시달리면서 그의 생에 큰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1920년 서울로 상경하여 YMCA 중학부에서 1년간 수학하면서 교사였던 월남 이상재(李商在)의 영향을 받았다. YMCA 중학부에서 공부를 하다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준비한다는 혐의로 평양경찰서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이때를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회고하였다. 1921년 7월 7일 일본으로 건너가 친구들과 함께 엿장수를 하며 주오[中央]대학에서 1년간 정치학을 공부하고 비밀결사 흑도회(黑濤會)에 참여하여 아나키즘에 심취하였다. 하지만 아나키즘이 관념적 유희에 그쳐 실망하게 된다. 그는 보다 강력한 조직력이 있어야만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사회주의사상에 입각한 독립쟁취를 목표로 변화하였다. 러시아혁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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