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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로마제국

이탈리아 반도 및 유럽 그리고 지중해를 넘어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와 이집트까지 지배하였던 고대 최대의 제국(帝國). 로마제국의 역사는 BC 8세기 무렵부터 시작되는데 그리스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주해간 한 집단이 테베레 강 근처에 정착하면서 로마의 역사가 시작된다. 설화에 의하면 테베레 강에 두 아이(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버려졌는데 이들은 늑대의 젖을 먹고자란다. 두 형제는 다툼으로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로물루스는 세력을 넓혀 약 3000여 명의 주민으로 로마(Roma)라는 작은 도시국가를 건설한다.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이 일대에서 목축과 농업을 주업으로 했는데 이들을 규합하여 왕으로 선출된 로물루스는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원을 창설하였다. 로마는 로물루스 이후 왕정기(王政期, 기원전 753~509)를 거치게 되는데 7명의 왕이 로마를 통치하면서 국가의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왕의 독재적인 1인 지배에 저항하였고 공화정을 열게되었다. 이는 로마가 거대한 대제국으로 발전하는데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변화였으며 그리스적인 민주주의 도시국가 운영제도에서 따온 영향이었다. BC 510년부터 공화정기(共和政期)가 시작되는데 로마의 발전을 이끈 중요한 시기이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지중해 연안의 모든 지역을 지배했고 북아프리카, 아시아까지 확대되었고 북유럽 영국까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비대해지고 정복지를 속주로 삼아 통솔하는 1

청송 불로주

청송 불로주

쌀로 빚은 순곡증류주로 경상북도 지방 함양 조씨 문중에 전해 내려오는 가양주이다. 과거 청송군에서 제조되다가 포항으로 터를 옮기면서 포항 불로주라고도 불린다. 쌀로 빚은 순곡증류주(純穀蒸溜酒)로 경상북도 지방의 가양주이다. 맑고 투명한 빛깔에 부드럽고 자극이 없는 맛을 가지고 있으며 뒤끝이 깨끗하고 숙취가 없는 것이 특징적이다. 알코올 농도 45%, 35%, 22%의 다양한 도수로 판매되고 있다. 연혁 정유재란(丁酉再亂) 이후 함안 조씨 문중에서 수백 년 간 문중 제사나 접빈용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가양주로, 1994년 4월에 특허를 받아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청송 불로주는 청송군 진보면 신촌리의 암반충에서 나온 탄산 약수를 활용하여 찹쌀, 멥쌀, 누룩으로 빚은 술로, 1995년 12월 경상북도로부터 1군 1명품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며 1997년부터 일본 동경국제식품박람회의 출품하여 일본에 수출되기도 하였다. 이후 신촌리 신촌약수탕 인근에 위치하였던 제조장을 2006년 포항북구 청하면 소동리의 공장으로 이전하면서 제조방식에 있어 현대식 기술을 접목하게 되었고, 포항 불로주라는 명칭과 함께 포항의 특산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편 불로주는 2006~2007년 대한민국 우수특산품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당시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했던 2009 한국 전통주 품평회에서 증류식 소주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제조법 청송 불로주를 만드는 법은 우선 찹쌀, 백미를 1 대 1 비율로 섞어서 하룻밤 불린 뒤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

러시아연방에 속한 타타르스탄의 볼가강 연안에 있는 7~15세기의 유적을 가리킨다. 중세에 번성하였던 볼가 볼가르 문명을 증거하는 유적으로서 2014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볼가르(Bolgar)는 러시아연방의 자치공화국인 타타르스탄의 스파스키 지구(Spassky District)에 속한 도시이다. 중세에 번성하였던 볼가 볼가르(Volga Bulgar) 문명을 증거하는 유적으로서 199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되었으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실사 평가를 거쳐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러시아의 26번째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되었다. 등재된 문화유산의 면적은 424㏊, 주변의 완충지역(Buffer zone) 면적은 1만 2101㏊이다. 유적지는 볼가강(Volga River)과 카마강(Kama River)의 합류점에서 남쪽으로 약 30㎞, 타타르스탄의 수도 카잔(Kazan)에서 남쪽으로 약 200㎞ 거리에 있다. 볼가강 좌안(左岸)에 접하는 볼가르 지역에 사람이 처음 정착한 시기는 500년경으로 추정되며, 고대 대불가리아(Old Great Bulgaria)가 하자르(Khazar)에 의하여 붕괴되고 나서 660년경에 쿠브라트(Kubrat)의 아들 코트라그(Kotrag)가 투르크계(系)의 불가르족(Bulghārs)을 이끌고 볼가강과 카마강의 합류점에 볼가 불가르를 세웠다. 볼가 불가르를 세운 불가르족은 현지의 핀계와 슬라브계 원주민을 지배하면서 번성하였고, 922년에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이후 오랫동안 볼가르 지역은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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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서울특별시 북한산 비봉(碑峰) 절벽 위에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의 순수비가 있던 자리. 1972년 7월 24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72년 7월 24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진흥왕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이 영토확장과 국위선양을 위해 세운 기념비인데 비석의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1972년 원비(原碑)인 국보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경복궁으로 옮겨져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하고, 비가 서 있던 자리를 사적으로 지정하여 표석(標石)이 세워져 있다. 비석은 아래쪽 모서리가 떨어져 나갔는데 이 자리가 산정(山頂)이기 때문에 풍화가 심할 뿐만 아니라 등산객의 왕래가 빈번하여, 비를 그대로 두면 손괴(損壞)가 점점 더할 것을 우려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강유역과 함경남도 지역까지 점유한 진흥왕은 555년 10월 북한산을 순행(巡行)하여 강역(疆域)을 확정하였고, 11월에는 북한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통과한 여러 고을에 1년 동안의 세금을 면제해주고 특별사면으로 죄수들을 석방하였는데,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순수비로 추정된다. 북한산의 승가사(僧伽寺) 뒤쪽 해발고도 556m인 큰 바위 위에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져 있었으며 비석이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비봉이라는 산봉우리 이름이 유래하였다. 북한산 순수비는 조선 후기의 서화가·금석학자인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승가사에 들렀다가 이곳에 찾아와 이끼가 덮인 비면을 닦아내고 판독함으로써 진흥왕순수비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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