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로알 아문센

로알 아문센

노르웨이의 극지탐험가로 1911년 인류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하였다. 그 외 북서항로 항행에 최초로 성공, 북자극 위치를 확인했고, 북동항로 항행, 북극점 상공 통과 횡단비행에도 성공했다. 선원의 아들로 보르게에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북극탐험을 꿈꾸었다. 크리스차니아(지금의 오슬로)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1895년 1등항해사가 되고, 1897∼1899년 벨기에의 남극탐험대에 참가하였다. 이어서 탐험가 F.난센의 조언을 얻어 북자극(北磁極) 및 북서항로의 탐험을 기획, 1901년 그린란드 해양을 조사하였다. 1903∼1906년 소형선 이외아호(號)를 타고 대서양에서 북극해를 거쳐 태평양에 이르는 북서항로 항행에 사상 처음으로 성공하였으며, 이 항해에서 북자극의 위치를 확인하였다.1909년 미국인 R.E.피어리가 북극점에 도달하자 목표를 남극으로 바꾸어 1910년 프람호(號)로 남극탐험을 떠났다. 로스해(海)의 고래만(灣) 대빙벽에 기지를 설치하고 개썰매로 남극점을 향해 출발한 지 55일 만인 1911년 12월 14일 인류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하였으며, 영국의 스콧 일행보다 35일 앞섰다. 1918∼1920년 모드호(號)를 타고 북동항로 항행에 성공하였고, 1925년 미국의 L.엘즈워스와 함께 비행정(飛行艇)에 의한 북극비행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1926년 다시 엘즈워스, 이탈리아의 U.노빌레와 함께 비행선(飛行船) 노르게호(號)로 스피츠베르겐으로부터 알래스카의 테러까지의 북극점 상공 통과 횡단비행에 성공하였다.1928년 노빌레 일행의 북극탐험대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출하기 위해 비행정으로 포롬세

꽃게탕

꽃게탕

손질한 꽃게를 주재료로 하여 마늘, 대파 등의 야채와 함께 매콤하게 끓인 한국의 탕 요리. 꽃게에 마늘, 대파 등의 야채를 넣어 끓여낸 매운 맛의 탕 요리로 꽃게매운탕이라고도 한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와 같이 꽃게 어획이 가능한 해안 지역에서 발달한 향토 음식이다. 재료 주재료인 꽃게는 한국인이 가장 즐겨먹는 게 종류로 예로부터 찜이나 무침, 절임, 탕 등으로 조리해 먹었던 식재료이다. 꽃게탕은 지역에 따라 조리 방식의 차이를 보이는데, 충청남도에서는 주로 꽃게에 무와 애호박, 쑥갓 등을 첨가한 뒤 된장, 고춧가루, 고추로 간을 하여 끓인다면, 전라북도에서는 꽃게에 양파, 대파, 다진 마늘, 풋고추 등의 재료에 된장, 들깨, 다진 고추, 간장 등으로 간을 하여 끓여낸다. 이때 두 지역의 조리법은 조리 방식과 재료에 있어 차이를 보이나, 된장과 고추장 혹은 다진 고추로 양념을 하여 대체로 구수하면서 얼큰한 맛을 낸다. 한편 꽃게탕에 된장을 넣으면 꽃게의 비린 맛을 잡을 수 있으며, 무를 넣으면 시원한 맛을 낼 수 있다. 조리법 충청남도에서 꽃게탕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꽃게는 깨끗이 세척하여 등딱지를 떼어내고 4등분한다. 무는 나박썰기하고, 애호박은 반달모양으로 썬다. 양파를 채 썰고 홍고추와 풋고추는 어슷하게 썰어 준비한다. 냄비에 물을 붓고 손질한 무, 된장, 고춧가루를 푼다. 물이 끓으면 여기에 꽃게와 애호박, 양파를 넣고 썰어놓은 고추를 첨가한다. 소금

세고비아 옛 시가지와 수도교

세고비아 옛 시가지와 수도교

스페인 카스티야레온지방(Castile-Leon) 세고비아주에 있는 역사유적. 로마시대의 수도교와 로마네스크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세고비아는 에레스마강(Eresma R.)과 클라모레스강(Clamores R.) 사이에 있는 해발 1,000m의 바위산에 건설되었다. 11세기 후반에 이슬람교도들이 들어와 도시를 파괴하였으나, 알폰소 10세가 도읍지로 정하며 번성하였다. 16세기 초에는 카를로스 1세와 자치도시 주민(코무네로스)들의 싸움으로 도시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였으나 곧 재건되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오늘날 도시 곳곳에는 로마시대의 수도교와 성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 등의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 ‘다리’로 불리는 수도교는 트라야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98~117년에 건설한 것으로 프리오강(Rio Frio)에서 물을 끌어와 높은 지대 주택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수도교는 다듬은 화강암으로 만든 166개의 2층 아치로 되어 있으며 전체길이 약 813m, 최고 높이 약 30m에 이른다. 아치 윗단 가운데에 있는 벽감에는 성세바스티아누스상이 안치되어 있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의 하나인 알카사르(Alcázar)는 군사요새로 사용된 아름다운 성이다. 궁전과 높이 80m에 이르는 망루가 있으며 건축연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중세에는 카스티야왕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는데, 왕들마다 원래의 요새에 새로운 건축물을 지어 확장하였다. 13세기 중반에 일부분이 붕괴되고 19세기에는 화

슬라이드 바로가기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幕府)장군에게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 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되자, 조선국왕과 막부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통신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信義)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절의 명칭은 회례사(回禮使) ·회례관(回禮官) ·통신관(通信官) ·경차관(敬差官) 등 다양하였다.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 박분(朴賁)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었지만, 중도에 정사가 병이 나서 중지되었다. 그뒤 통신사의 파견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1429년(세종 11) 교토[京都]에 파견된 정사 박서생(朴瑞生)의 사절단으로 최초의 통신사라고 할 수 있다. 파견목적은 임진왜란 전에는 주로 왜구 금지요청이 주가 되었으나, 그 후에는 강화와 포로들의 쇄환(刷還), 일본국정의 탐색이었고, 1636년(인조 14) 이후는 막부장군의 습직(襲職) 축하가 주임무였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의의는 조 ·일 양국간만이 아니라,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공존을 위한 국제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있다. 파견절차는 일본에서 새로운 막부장군의 승습이 결정되면, 대마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