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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

일본의 정치가로서 제국주의에 의한 아시아 침략에 앞장서 조선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요하고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일본에서는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되지만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으로서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하여 죽었다. 아명은 하야시 리스케[林利助]로 야마구치현[山口縣]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한 농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가 하기번[萩藩]의 무사 집안인 미즈이[水井, 뒤에 伊藤로 바꿈] 가(家)의 양자가 되면서 하급무사의 신분을 얻었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서 수학(修學)하며 존왕양이(尊王攘夷) 운동에 참가하였다. 1863년 서양의 해군학을 공부하러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이듬해 귀국한 뒤 영국·프랑스·미국 등의 열강과 조슈번[長州藩] 사이에 시모노세키전쟁[下関戦争]이 일어나자, 전후(戦後) 평화교섭 과정에 통역으로 참가하였다. 그리고 1864년 조슈번[長州藩]과 막부(幕府) 사이에 벌어진 막장전쟁(幕長戦争)에서 보수파들이 막부에 타협적인 자세를 보이자,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晋作, 1839~1867)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조슈번[長州藩]의 실권을 장악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 이름을 바꾼 뒤 신정부에 참여하여 외국사무국(外国事務局) 판사(判事), 효고현[兵庫縣] 지사(知事) 등 요직(要職)을 역임하였다. 영어에 능통하여 1870년에는 화폐와 은행 제도를 조사하기 위하여 미국에 파견되었으며, 1871~1873년에도 해외를 시찰하였다. 1878년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1830~1878)가 암살되자 그를 계승해 내무성(

만사나스 아사다스

만사나스 아사다스

껍질을 벗긴 사과의 씨앗을 파낸 뒤, 그 안에 버터, 설탕 등을 채워 오븐에 구워낸 스페인산 디저트. 사과에 간 아몬드, 건포도, 버터, 설탕 등을 채워 오븐에 구워낸 디저트이다. 스페인의 요리로, 이때 스페인어로 만사나(manzana)는 ‘사과’를,  아사다(asada)는 ‘구운’을 뜻한다. 만사나스 아사다스에 사용하기 적당한 사과 품종으로는 매킨토시 애플(Mcintosh apple), 골든 딜리셔스(golden delicious) 등이 있다. 요리는 따듯하게 먹는 것이 보통이나 휘프트 크림을 뿌려 먹기도 한다. 만사나스 아사다스는 사과의 껍질을 벗긴 뒤 씨앗이 있는 중심부를 도려내어 그 안을 채워낸 뒤 오븐에 구워낸 디저트로, 간단하게는 버터와 설탕을 첨가하여 오븐에 구워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나 간 아몬드, 건포도 등을 추가하여 좀 더 풍부한 맛을 구현해내기도 한다. 조리법 사과를 씻어 말린 뒤 껍질을 벗기고, 씨앗이 들어있는 사과의 중심부를 파낸다. 이때, 사과 밑부분까지 완전히 관통되지 않도록 한다. 이때 사과의 변색을 막으려면 사과에 레몬주스를 문질러주면 된다. 아몬드는 데쳐 준비한 뒤 177℃로 예열한 오븐에 넣어 약 5분간 노릇해지도록 구워낸다. 아몬드는 식힌 후 푸드 프로세서에 넣어 잘 갈아준다. 소스 팬에 약간의 럼과 물, 건포도를 넣어 끓인다. 작은 볼에 달걀 노른자를 넣어 잘 섞은 뒤 설탕, 간 아몬드, 버터를 넣어 잘 섞는다. 여기에 럼과 함께 끓여주었던

페라폰토프 수도원 유적

페라폰토프 수도원 유적

러시아의 북서부 볼로그다 지역에 위치한 수도원 지구이다. 15~17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러시아 정교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건물 내부는 디오니시(Dionisy)의 채색벽화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북아시아에서 동부 유럽까지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의 세계유산이다. 러시아의 서북부 지역인 볼로그다(Vologda)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수도 모스크바(Moscow)로부터 북동쪽 방향으로 400여 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근방에는 또 다른 대수도원인 끼릴로베로젤스키 수도원(Kirillo-Belozersky Monastery)이 위치하고 있다. 15~17세기는 러시아의 여러 세력들과 다양한 문화가 하나로 통합되어 발전해 나가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그러한 시대 흐름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러한 통합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러시아 정교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종교 건축물들이 매우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페라폰토프 수도원(Ensemble of the Ferrapontov Monastery)은 당시에 지어진 러시아 정교의 수도원 건축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수도원은 14세기 말 성 페라폰트(Saint Ferapont)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후 400년간 이곳은 러시아 북서부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종교적·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남아있는 페라폰트 수도원 지구의 건물 중 가장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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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입개헌

사사오입개헌

이승만 정권 시절, 헌법 상 대통령이 3선을 할 수 없는 제한을 철폐하기 위해, 당시의 집권당인 자유당(自由黨)이 사사오입의 논리를 적용시켜 정족수 미달의 헌법개정안을 불법통과시킨 제2차 헌법개정. 1948년 대한민국 성립 시에 대통령을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하도록 되어있던 헌법을 1952년에는 대통령 직선제안 헌법으로 개정하여(발췌개헌) 이승만(李承晩)이 중임되었다. 이승만과 자유당은 3선을 하고자 하였으나 당시의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는 4년제이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었다. 이에 이승만과 자유당은 초대 대통령에 대한 중임제한 철폐를 골자로 한 개헌(改憲)을 준비했다.1954년 5월 20일에 실시되는 민의원 선거에서, 3선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을 후보로 추천하여 다수 당선시켰고, 무소속 의원들도 다수 유인하여 개헌 정지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UN에서 한국 통일을 위한 선거안이 제기되었다. 정부는 이에 대하여 국가 안위에 관한 사안은 국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국민투표제를 제기하였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투표제를 대표 안건으로 내세우고, 이와 더불어 3선금지조항 폐지·국무원의 연대 책임제 폐지·개별 국무원 불신임 인정·부통령의 대통령 승계권 부여 등을 골자로 헌법 개정안을 제출하려 하였다. 그리고 여당인 자유당에서는 김두한(金斗漢)을 제외한 전 의원과 다수의 무소속 의원이 서명에 참여하여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국회에서 비밀투표를 한 결과(1954. 11. 27), 재적의원 203명, 참석의원 202명 중, 찬성이 135표, 반대가 60표, 기권이 7표로 나타났다. 당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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