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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푸어 선언

밸푸어 선언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부 장관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선언.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동에서 영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유럽에서 인도로 향하는 길목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가졌다.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통제하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와 인접하며 영국이 장악한 이라크 남부 지역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교두보로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많은 영국 정책 결정자들이 가진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도 팔레스타인은 성지(聖地)로서 특별한 땅이었다. 영국 정책 결정자들은 유대인들이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중동 현지 기독교도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중동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러시아와 프랑스에 대응해 중동에서 영국을 지지할 세력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했다. 영국에 우호적인 세력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통제하려는 영국의 목표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우려는 시오니즘 운동가들의 목표와도 부합했다. 영국시온주의연맹 회장인 하임 바이츠만(Chaim Weizmann)은 영국 정계의 주요 인사들과 가진 인맥을 이용해 시오니즘에 대한 영국 고위 인사들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1916년 12월 총리에 취임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는 이러한 이유에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운다는 계획을 지지했다. 1917년 11월 2일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 외무

치오피노

치오피노

바다에서 난 게, 조개, 새우, 가리비, 홍합, 오징어, 생선 등을 토마토, 와인 등과 함께 끓여낸 미국의 생선 스튜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래하였다. 바다에서 해산물에 토마토, 와인 등을 첨가하여 함께 끓여낸 미국의 생선 스튜이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이민자들에 의해 개발된 이탈리아계 미국 요리(Italian-American dish)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이탈리아 식당이 번성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탈리아 리구리아주의 전통적인 수프인 추핀(ciuppin)에서 유래하였으며, 치오피노라는 명칭은 리구리아 방언으로 ‘다져지고 잘게 조각난’이라는 뜻을 갖는다. 치오피노는 전통적으로 그날 어획된 해산물을 활용하여 만들어지며, 재료가 되는 해산물로는 미국 서부해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던저니스 크랩(Dungeness crab), 게, 조개, 새우, 가리비, 오징어, 홍합, 생선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토스트한 빵을 곁들여낸다. 조리법 큰 냄비에 기름을 두른 뒤 잘게 자른 당근과 양파, 셀러리, 후추를 넣고 볶아준다. 여기에 잘게 자른 마늘, 고추, 허브를 넣고 한 번 더 볶아준다. 레드 와인과 레드 와인 비네거, 우스터소스, 핫소스를 넣고 불을 줄여 물이 거의 사라질 때까지 끓인다. 그다음 토마토퓌레, 피시 스톡(fish stock)을 넣고 1시간에서 1시간 30분 동안 끓인다. 체를 준비하여 야채 등을 국물에서 걸러주고, 거른 국물을 다시 냄비에 담아 생선, 홍합, 게, 새

쿠트나 호라: 성바르바라 성당이 있는 역사지구와 세들레츠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쿠트나 호라: 성바르바라 성당이 있는 역사지구와 세들레츠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체코 체히주에 있는 도시유적. 보헤미아 지방 서쪽 분지에 세워진 도시로서 13세기 후반 은광맥이 발견되어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14세기에는 유럽 최대의 은 산출지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주조된 은화(프라하그로센)는 국제통화로 인정받았다. 14∼15세기의 번영기에는 은으로 축적한 부로 도시 곳곳에 화려하게 장식된 궁전과 성당 등이 세워졌다. 체코를 대표하는 후기고딕 양식의 성바르바라 성당은 1388년 무렵 착공하여 1512년 완성하였다. 1개의 신랑(身廊)과 4개의 측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차 모양의 리브 볼트로 이루어진 높은 내부 공간을 갖추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본체 볼트의 무게를 분산하고 벽체 구조에 경쾌감을 주는, 고딕 양식 구조물인 플라잉 버트레스를 설치하였다.   새들레츠 지구에 있는 성마리아 성당은 1304년 건설한 시토회 수도원 성당으로서, 1707년 무렵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우르술라회 수도원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서, 장식이 많은 벽·기둥과 타원 모양의 볼트로 꾸민 천장 등이 특징이다. 일반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돌의 집'에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파사드가 있다. 후기고딕 양식의 건물로서 현재 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된다. 1994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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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한용운

독립운동가 겸 승려, 시인. 일제강점기 때 시집《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조선불교유신론》 등이 있다. 본관 청주(淸州), 호 만해(萬海·卍海),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이다.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출생하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건양 1)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 그 뒤 1905년(광무 9)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융희 2)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설립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918년 서울 계동(桂洞)에서 월간지 《유심(惟心)》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이듬해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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