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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

13세기 말 이후 셀주크튀르크를 대신하여 소아시아(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슬람 국가(1299∼1922). 오스만 제국(1299~1922)은 13세기 말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등장하였으며 다민족·다종교 국가로서,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3개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다. 제국이 태동하던 시기의 아나톨리아 반도 일대는 군소국들이 분할하여 통치하였으며 그 이전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다. 이 지역은 민족 간의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11세기 경 북쪽 튀르크 인들이 아나톨리아 발도로 대거 이주해오면서 이 지역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튀르크 족은 유목민이었으며 이들은 토착세력인 이슬람인들과 갈등 속에서 자신들의 영역과 영향력을 점차 넓혀나갔으며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에 동화되었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이 쇠퇴하자 튀르크인들은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유럽의 동부지역까지 진출하였다. 하지만 십자군의 등장으로 유럽으로 진출이 좌절되었다. 13세기에 들어 몽골제국이 등장하고 이 때문에 북쪽의 튀르크인들의 집단이동이 가속화되어 인구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튀르크인들이 만든 여러 소국중에서 오스만 1세가 거느린 유목민 집단이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점자 강대한 국가로 성장했다. 다양한 종교를 가진 민족들이 오스만의 지배권으로 통합되었다. 오스만 왕조는 점차 영토를 넓혀갔으며 술탄 메흐메드 2세가 통치한 15세기에는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16세

슬로피조

슬로피조

간 소고기에 양파, 토마토소스 혹은 케첩 등을 첨가하여 만든 속을 햄버거 번 안에 채워 넣은 샌드위치로, 미국의 음식이다. 햄버거 번에 간 소고기, 양파, 토마토소스 혹은 케첩 등을 섞어 만든 속을 넣은 샌드위치이며, 20세기 초부터 미국에서 먹기 시작한 음식이다. 슬로피 조의 유래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오와주 플리머스카운티에 위치한 수시티(Sioux City)의 플로이드 앤젤스 카페(Floyd Angell's café)의 조(Joe)라는 이름의 요리사가 당시 인기 있던 루스 미트 샌드위치(loose meat sandwich; 빵에 쪄낸 간 소고기, 양파 등을 첨가하여 만든 샌드위치)에 토마토소스를 첨가하면서 만들어진 샌드위치라고 한다.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는 음식으로, 캐주얼한 식당에서는 미국 전역의 학교 식당 메뉴로도 즐겨 등장하는 음식이며,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 있다. 한편 미국의 몇몇 지역에서는 주재료인 소고기를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으로 대체하기도 하며, 시나몬이나 설탕이 추가로 첨가되기도 한다. 제조법 양파, 피망은 작게 잘라 준비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양파, 피망을 넣어 볶아준다. 여기에 간 소고기를 넣고 잘 섞어준다. 소고기가 갈색을 띨 때까지 약 5~10분간 섞어준다. 케첩, 우스터 소스, 설탕, 소금, 후추를 넣고 낮은 불에서 약 10분간 조린다. 완성된 속을 구운 햄버거 번에 넣어 샌드위치를 완성한다. 영양정보 주재

푸토라나고원

푸토라나고원

러시아 중부 크라스노야르스크주(州)에 있는 고원지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푸토라나 산맥이라고도 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주에 있는 중앙시베리아 고원 북서쪽 가장자리의 산악지대에 높이 자리 잡은 현무암 고원이다. 북쪽으로 타이미르 반도(Taymyr Peninsula)가 있고, 북극권 한계선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있다. 1988년 큰뿔양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순록떼를 보호하기 위해 푸토란스키 자연보호구역(Putoransky State Nature Reserve)으로 지정하였고 2010년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였다. 면적은 177만 3300ha이다. 중앙시베리아 고원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최고봉은 카멘산(Mount Kamen:1,701m)이다. 손상되지 않은 냉수호, 하천계는 물론 자연 그대로의 타이가, 툰드라 숲, 툰드라·북극 사막 등 고립된 산악지대의 아북극·북극 생태계가 나타난다. 순록떼의 주요 이동로가 고원을 가로지르는데, 이러한 순록떼의 대규모 이동은 매우 이례적이고 규모가 매우 크며 희귀한 자연현상이다. 고원은 시베리아 용암대지(Siberian Traps)로 이루어지며, 가장 가까운 마을은 광업도시인 노릴스크이다. 대규모 니켈 매장지가 있으며 러시아 지리학적 중심지인 비비호(Lake Vivi)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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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

이황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주자의 사상을 깊게 연구하여 조선 성리학 발달의 기초를 형성했으며, 이(理)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주리론(主理論) 전통의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조(宗祖)로 숭앙된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초명(初名)은 서홍(瑞鴻)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며, 호(號)는 퇴계(退溪)인데 ‘물러나 시내 위에 머무른다’는 뜻의 ‘퇴거계상(退居溪上)’에서 비롯되었다. ‘계(溪)’는 이황이 물러나 머물렀던 ‘토계(兎谿)’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해석된다. 청량산(淸凉山) 기슭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여 도옹(陶翁)·도수(陶叟)·퇴도(退陶)·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는 별호(別號)도 사용했다. 시호(諡號)는 문순(文純)이다. 1501년 11월 25일(음력) 예안(禮安,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진사 이식(李埴, 뒤에 좌찬성으로 추증됨)의 7남 1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열두 살 때부터 숙부인 이우(李堣)에게 학문을 배웠다. 1528년에 소과(小科)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534년 식년시(式年試)에서 문과(文科)의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그 뒤 외교 문서의 관리를 담당하던 승문원(承文院)의 부정자(副正子)·박사(博士)·교리(校理)·교감(校勘) 등을 역임했으며,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시강원(侍講院)의 문학(文學) 등의 직위에도 있었다. 1542년에는 충청도에 어사로 파견되기도 하였고, 1543년에는 성균관의 교수직인 사성(司成)이 되었다. 15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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