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한자동맹

한자동맹

중세 중기 북해 ·발트해 연안의 독일 여러 도시가 뤼베크를 중심으로 상업상의 목적으로 결성한 동맹.
12, 13세기경 유럽에는 한자(Hansa)라고 불리는 편력상인(遍歷商人)들의 단체가 많이 있었는데, 14세기 중반에 이르자 그들 사이에서 ‘독일한자’ 또는 ‘한자동맹’이라는 도시동맹(都市同盟)이 성장하여, 중세 상업사상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독일 본국의 도시 사이에는 자치의 확보, 치안의 유지 등의 필요성에서 도시 상호간의 정치적 ·군사적 동맹을 결성(예컨대 1230년의 뤼베크 ·함부르크 간의 조약 체결)하는 기운이 높아졌다. 14세기 전반 플랑드르에서 압박을 받은 독일상인이 대항책으로서 본국 도시에 연합적인 지원을 요구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어 한자동맹이 성립되었다. 또, 1358년 플랑드르에 대한 상업봉쇄 선언을 할 때 라인강부터 북해 ·발트해에 면한 많은 도시가 ‘독일한자’라는 도시동맹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1366년부터 외지에서의 한자 무역의 특권은 동맹에 가입한 도시 시민에 한하게 하여 그 기초가 더욱 견고해졌다. 한자동맹의 실체는 극히 탄력성 있는 경제적 ·정치적 연합이었기 때문에, 한자 특권을 가지는 도시의 수는 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서 증감하였다. 흔히 ‘한자의 도시는 77’이라고 했지만, 최성기에는 100을 헤아릴 정도였다. 뤼베크를 맹주로 하여 브레멘 ·함부르크 ·쾰른 등이 4대 주요도시이며, 뤼베크에 ‘한자회의’를 두고 다수결로 정

파바다 아스투리아나

파바다 아스투리아나

누에콩, 소시지, 햄, 베이컨 등을 첨가하여 끓여낸 스페인의 스튜로, 아스투리아스 자치 지방에서 유래한 전통 요리이다.
누에콩, 소시지, 햄, 베이컨 등을 첨가하여 끓여낸 스튜이다. 스페인의 요리로 스페인 북서부의 자치 지방인 아스투리아스의 전통적인 음식이다. 이때 스페인어로 ‘아스투리아나(asturiana)’는 ‘아스투리아스 태생의’를 뜻하는 ‘아스투리아노(asturiano)’의 여성 활용형이다. 주로 파바다(Fabada)라 불리며, ‘파바다 아스투리아나(Fabada asturiana)'는 정식 명칭이다. 기원 음식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프랑스 남서부의 대표적인 요리인 카술레가 18세기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순례자들에 의해 아스투리아스 지방에 전해지게 되면서 영향을 받아 탄생한 요리로 추정된다. 파바다는 본디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스투리아스 지역의 누에콩과 먹고 남은 자투리 고기를 첨가하여 만든 가난한 이들의 요리였으나, 현대에는 다양한 채소와 소시지, 혹은 해산물 등이 첨가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주재료 주재료인 누에콩은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특산품이며, 요리에 첨가되는 고기류는 돼지고기로 만든 육가공품인 초리조, 모르시야(morcilla; 선지와 양파, 향신료, 쌀 등을 첨가하여 만든 소시지), 뼈가 있는 햄, 소시지, 베이컨 등과 돼지의 꼬리나 귀 부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는데, 이와 같이 파바다에 첨가되는 고기류는 ‘콤팡고(compango)

카잔 크렘린 역사건축물

카잔 크렘린 역사건축물

러시아연방 타타르스탄공화국의 카잔에 있는 건축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타타르스탄공화국의 수도인 카잔에 있는 성채로 카잔카 강과 볼가 강이 합류되는 지점 인근의 구릉 지역에 있다. 15세기 카잔 한국(Khanate of Kazan)의 유적들과 16세기 이후 러시아 제국이 새로 세운 건축물과 탑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00년에는 건축물을 포함해 일대 13만 ㎡에 이르는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카잔 크렘린의 역사는 11세기 초 투르크계 유목민족인 불가르인(Bulgar)이 이 지역에 성채를 쌓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15세기에 이르러 이 지역은 카잔 한국(Khanate of Kazan)의 수도로 번성하면서 성채 안에는 모스크와 왕궁, 귀족들의 저택 등이 세워졌다. 그러나 1552년 카잔 왕국이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4세의 침공으로 멸망하면서 카잔의 건축물들도 대규모로 파괴되었다. 카잔의 성채도 쇠옘비케 탑(Söyembikä Tower)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 뒤 프스코프(Pskov) 출신의 포스트닉 야코프레프(Postnik Yakovlev)가 감독하면서 성채가 다시 축조되었다. 카잔이 러시아 제국의 동부 중심지로 번성하게 되면서부터는 성채가 남쪽으로 확장되고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 현재와 같은 카잔 크렘린의 외형이 갖추어진

슬라이드 바로가기
신탁통치반대운동

신탁통치반대운동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합의된 한국의 신탁통치안에 대한 대규모의 반대 운동.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해방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세계 질서는 미국과 소련이 양분하는 형태로 변화해 나갔다. 1947년 미국의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이 발표한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과 그에 따른 마셜 플랜(Marshall Plan)의 시행은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대결인 냉전(Cold War, 冷戰)의 출발점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한국은 해방을 맞이하였다. 미국은 일본이 항복하자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하여 소련에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군사적으로 분할 점령할 것을 제의하였다. 소련이 이를 받아들여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군, 북쪽은 소련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미군은 군정청(軍政廳)을 설치하여 남한을 직접 통치하였고, 소련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북조선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북한을 간접 통치하였다.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 1945년 12월 16일,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미국, 영국, 소련의 외무장관이 모스크바에 모였다(모스크바 3상회의).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는 이탈리아·루마니아·헝가리 등과의 평화 조약 체결, 극동 위원회와 한국·중국·일본에 관한 연합국 협의회 설치, 원자력 통제를 위한 기구 설립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특히 한국에 관한 문제에서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