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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UN)

국제연합(UN)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 활동은 크게 평화유지활동·군비축소활동·국제협력활동으로 나뉘며, 주요기구와 보조기구·전문기구로 구성되어 있다. 1946년 붕괴된 국제연맹을 계승한 것으로 유엔(UN:United Nations)이라고도 한다. 이 명칭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가 고안한 것이며, 제2차 세계대전 중 26개국 대표가 모여 추축국에 대항하여 계속 싸울 것을 결의하였던 1942년의 '연합국 선언'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기구에 관한 연합국 회의'에 참석한 50개국 대표는 1944년 덤바턴오크스에서 회합한 미국·영국·중화민국(현 타이완)·소련 등 4개국 대표가 합의한 초안을 기초로 국제연합헌장을 작성하였다. 50개국 대표는 1945년 6월 26일 국제연합헌장에 서명했으며, 폴란드가 추후 서명하였다.국제연합은 미국·영국·프랑스·중화민국(현 타이완)·소련과 여타 서명국 과반수가 국제연합헌장을 비준한 1945년 10월 24일 공식 출범하였으며, 이후 매년 10월 24일을 국제연합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본부는 미국 뉴욕시(市)에 있다.주요활동은 크게 평화유지활동·군비축소활동·국제협력활동으로 나눌 수 있으며, 2001년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전 국제연합 사무총장 코피 아난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07년 1월 한국인 최초로 반기문 국제연합 사무총장이 취임했다.크게 주요기구와 보조기구(Subsidiary Orgnas)·전문기구(Specialized Agenies

캄차카 화산군

캄차카 화산군

러시아의 캄차카주에 있는 화산군. 러시아 연방 동쪽 끝에 있으며 세계에서 활화산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분화양식과 지질변화가 나타나며 대지(臺地)·칼데라·함몰지 등의 화산지형, 간헐천·용천수·온천 등을 볼 수 있다. 면적 3만 3,000㎢이고 10여 개의 활화산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화산은 대부분 캄차카반도 동쪽 베링해 연안에 모여 있으며,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화산군은 비스트린스키 자연공원·국립 크로노츠키 생물권 보호지역·나뤼체보 자연공원·남캄차카 자연공원·국립 남캄차카 생물권 보호지역 등이다. 크로노츠키 지역에는 원추형의 크로노츠키화산(해발 3,528m)이 있고 나뤼체보공원에는 아바친스카야화산(2,741m)·코랴크스카야화산(3,456m), 남캄차카 자연공원과 남캄차카 생물권 보호지역에는 골레루이화산(1,829m)·호두토카화산(2,087m)·무토노프스카야화산(2,323m) 등이 있다.  화산군에는 식물이 필요로 하는 토양과 물,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어 아한대 침엽수림에 속하는 낙엽송·전나무·미루나무 등과 사초과·화본과인 개제비란·난초 등 약 800종의 식물들이 자란다. 동물은 사향뒤쥐·밍크·검은담비 등의 포유류, 검독수리·매·꺅도요 등의 조류, 연어 등의 어류가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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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나혜석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제1회부터 제5회까지 입선하였고, 1921년 3월 경성일보사 건물 안의 내청각에서 한국 여성화가로서 최초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 소설가로도 활약하였다. 1896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신풍동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고 호는 정월(晶月)이다. 부친 나기정(羅基貞)은 대한제국 때 경기도 관찰부 재판주사, 시흥군수를 지냈으며 일제시대 때는 용인군수를 역임하였다. 나혜석은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1913년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를 최우등의 성적으로 졸업한 후 둘째 오빠 나경석(羅景錫)의 권유로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에 입학하여 화가로서의 공부를 시작하였다. 오빠 나경석은 자신의 친구 최승구(崔承九)를 나혜석에게 소개하였다. 이미 본국에 조혼(早婚)한 아내가 있었으나 최승구와 나혜석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였다. 1916년 최승구가 폐병으로 사망한 후에는 나혜석의 인생관은 돌변하여 모든 희망을 예술에 걸게 되었다. 1919년 그녀가 일본 유학시절 발발한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3월 25일 이화학당 학생 만세 사건에 깊이 관여함으로써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나혜석은 모순된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고 일본 유학생이었던 교토제국대학을 다니던 친일파 김우영(金宇英)의 6년 구애를 받아들여 1920년 4월 서울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1921년 3월에는 경성일보사 내청각(來靑閣)에서 조선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유화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였으며 전람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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