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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미술

로코코미술

17세기의 바로크 미술과 18세기 후반의 신고전주의 미술 사이에 유행한 유럽의 미술양식.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도 퍼져나갔다. 로코코라는 말은 프랑스어의 로카유(rocaille)에서 유래한다. 본래는 당시 귀족사회의 생활을 미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장식양식 내지 공예품에 대하여 쓰인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이 시대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는 유럽미술 전반에 걸친 양식개념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그 어원에서 오는 조소적(嘲笑的)인 의미는 불식되고, 독자적인 형식감정과 이에 부응하는 창조적이며 자율적인 가치를 가진 미술양식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로코코는 그에 앞서는 바로크 미술이 즐겨 쓰던 부정형(不定形)이나 유동적인 조형요소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및 변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는데,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意志的)임에 비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로코코의 특색은 그 말의 어원인 로카유가 조개껍데기 세공(細工)이나 모양을 가리키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장식미술, 특히 실내장식이나 가구류에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실내의 각 부분 또는 가구의 형태 등에 조개 모양이나 아칸서스무늬가 도입되고 혹은 그것들의 조합이라고 할 만한 곡선무늬가 뒤얽혀 물결친다. 건축가들은 당시의 살롱 문화를 배경삼아 이런 곡선을 활

바인퐁똠

바인퐁똠

새우와 타피오카 전분 등을 섞은 반죽을 기름에 빠르게 튀겨내 만든 베트남 새우칩. 새우, 타피오카 전분 등을 섞은 반죽을 납작하게 튀겨낸 음식으로, 바삭바삭하게 튀겨낸 새우칩이다. 베트남의 요리이며, 이때 베트남어로 ‘바인(bánh)’은 빵이나 케이크, 떡과 같이 모든 종류의 가루로 만든 음식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쌀이나 타피오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을 말한다. 또한 ‘퐁(phồng)’은 부풀리다라는 뜻을 가지며, 똠(tôm)은 새우를 뜻한다. 베트남은 물론 아시아 식료품 시장에서 판매되는 인기 있는 음식으로, 베트남에서 슈퍼마켓에서 튀기기 전 상태로도 판매되며 완제품의 스낵으로도 판매되며, 간식으로는 물론 술의 반주나 샐러드의 곁들임 음식으로도 즐겨 먹는다. 조리법 파의 흰 뿌리 부분과 마늘은 잘게 썰어 준비한다. 새우는 껍질과 내장을 제거한다. 푸드 프로세서에 새우, 파, 마늘을 넣어 페이스트의 형태로 만들어준다. 볼에 타피오카 전분, 낭 믁(nang mực: 갑오징어나 오징어에 있는 뼈로, 말린 상태로 판매됨)의 가루를 섞어준다. 여기에 새우 페이스트를 넣고 잘 섞어준다. 이것을 원통 모양으로 만든 뒤 호일로 팽팽하게 감싸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다. 찜통에 반죽을 넣고 약 한 시간가량 쪄낸다. 완성된 반죽은 찜통에서 꺼내 완전히 식힌다. 원통 모양의 반죽을 얇게 슬라이스

잘츠부르크 역사지구

잘츠부르크 역사지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같은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예술의 도시로 드라마틱한 도시 전경, 역사적 의미가 깊은 도시 구조, 수세기에 걸쳐 많은 교회건물과 유서 깊은 건축물등을 가지고 있는 교회적 도시형태의 중요한 모범사례이다. 199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사람은 영화 속의 무대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심했을 수도 있다. 중세양식의 건축물과 호수와 숲, 그리고 하얀 눈이 덮인 산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환상의 세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도시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이다. 빈에서 서쪽으로 300km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는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특히 모차르트의 생가는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그곳에는 모차르트가 사용하던 바이올린과 자필 악보, 가족의 초상화,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매년 여름 그를 기리는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열리면, 도시는 온통 관광객들로 북새통이 되곤 한다. 잘츠부르크는 '소금의 산'이라는 뜻이다. 7세기 후반만 해도 황량했던 도시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라이헨할 소금광산 덕택이다. 광산의 소금으로 부를 쌓은 잘츠부르크는 1077년부터 묀히스베르크산 언덕에 호헨잘츠부르크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후 후기 고딕양식과 바로크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도시 여기저기에 들어서자, 이 도시는 '알프스의 북로마'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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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

공양왕

고려시대 최후의 임금(재위 1389∼1392). 조정은 친원파와 친명파 대립했다. 친명파 이성계는 창왕을 폐위, 공양왕을 즉위시켰다. 정몽주 중심의 구세력에 이어 이성계에게 실권을 빼앗겼고, 폐위당했다. 이름 요(瑤). 신종(神宗)의 7대손이며,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 균(鈞)의 아들이다. 비(妃)는 창성군(昌城君) 진(稹)의 딸 순비(順妃) 노씨(盧氏)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원(元)나라에서 명(明)나라로 바뀔 때였으므로, 조정에서는 친원파(親元派)와 친명파(親明派)의 대립이 격심했으며, 친명파의 이성계(李成桂)는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뒤에 창왕(昌王)을 즉위하게 하였으나, 음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창왕을 폐위시키고, 1389년 공양왕을 즉위시켰다. 공양왕은 정몽주(鄭夢周)를 중심으로 한 기존 정치세력(勢力)에 이어 새로 실권을 잡은 이성계에게 완전히 실권을 빼앗겼다가, 정몽주가 살해된 후 덕이 없고 어리석다는 이유로 폐위당하였다. 이로써 고려는 34대 475년 만에 망하였다. 공양왕은 폐위된 뒤 원주(原州)에 추방되어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에 삼척(三陟)에서 살해되었다. 고려의 왕가(王家)였던 왕씨는 이성계 세력에 의해 멸족을 당했으며, 강화도로 집결하라는 명을 받아 배를 타고 강화도로 건너가던 중 배를 침몰시켜 많은 왕씨들이 수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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