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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독일 통일

1990년 10월 3일,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체제 아래서 연합국에 의해 강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일.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독일은 소련군이 진주한 동독과 서방 연합군이 진주한 서독으로 나뉘어 분할 통치되었다. 그러다가 냉전체제가 굳어지면서 1949년부터는 동서 양쪽에 독립된 정부가 들어서 분단이 공식화하였다. 1950년대 초에는 한때 중립 통일안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무산되고, 60년대부터는 국제적 냉전 기류에 편승한 서독의 이른바 할슈타인원칙에 따라 대결 국면이 조성되어 동독은 베를린에 장벽을 둘러싸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결 국면이 전환기를 맞은 것은 1969년 W.브란트(Willy Brandt) 총리가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하여 할슈타인원칙을 포기하면서부터이다. 이후 1972년대부터 1987년까지 약 15년간 34차례의 협상을 통해 과학 기술, 문화, 환경 등에 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동서독간 민간인의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1982년 H.슈미트(Helmut Schmidt) 서독 총리의 동독 방문에 이어 1987년에는 E.호네커(Erich Honecker) 동독 공산당서기장이 서독을 방문함으로써 통일에 일대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도 동독측은 1민족 2국가라는 통일 이념을 자본주의적 민족과 사회주의적 민족이라는 2민족론으로 바꾸어 통일에 소극적이었던 반면, 서독은 1국가 2체제론을 내세워 독일 민족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강조하였다.독일의 통일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아라곤의 무데하르 건축

아라곤의 무데하르 건축

에스파냐 아라곤자치지역 테루엘과 사라고사 지방(Provinces of Teruel and Zaragoza)에 있는 역사도시 유적. 무데하르 양식의 역사, 종교 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어 1986년과 200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원래 1986년 테루엘에 있는 산타마리아 데 메디아비야대성당(Cathedral of Santa María de Mediavilla), 산페드로성당(Churches of San Pedro), 산마르틴(San Martín) 성당과 사비오우르(Saviour)성당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테루엘의 무데하르 건축’으로 불렸으나, 2001년 사라고사와 그 주변지역에 있는 6개의 기념물이 추가로 지정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테루엘은 아라곤 지역에서 그리스도교도가 이슬람교도, 유대교도와 공존하였던 지역으로 국토회복운동 이후 도시의 재이주사업이 추진되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은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성당을 건립하였는데, 성당 건설은 이곳에 남아 있던 이슬람교도인 무데하르들이 담당하였다. 무데하르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만든 건자재, 벽돌, 타일 등을 사용하여 이슬람 건축양식에 서유럽의 요소를 배합한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었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건축물 가운데, 네모꼴의 평면에 아치, 벽돌과 타일 등으로 다채롭게 장식한 성당의 탑이 무데하르 양식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검고 푸른 타일, 유약 바른 벽돌 등으로 장식한 산타마리아 데 메디아비야대성당 탑(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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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단군

한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고조선의 첫 임금. 그에 관한 우리나라의 첫 사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史)》에 전하며, 천제(天帝)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고 전한다.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기록은중국의 《위서(魏書)》와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승려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편(紀異篇)에 실려 있고,같은 고려시대의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에 기록되어 있다.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권람(權擥)의 《응제시주(應製詩註)》에도 《삼국유사》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단군이나 고조선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에는 우선 최초의 기록인 《삼국유사》를 사료(史料)로서 인용하고 여기에 더 많은 신빙성을 둔다.삼국유사의내용은 간단하지만 많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桓因)의 서자(장남이 아닌 아들을 지칭)환웅(桓雄)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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