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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미술

고딕 미술

로마네스크 양식 이후 12세기 중엽부터 르네상스 미술 이전까지 전개되었던 유럽의 중세 미술 양식이다. 높은 첨탑의 교회 건축과 스테인드 글라스, 자연적이고 사실적인 회화 표현, 복잡하고 세련된 문양 등이 등장하였다. 정의와 어원 로마네스크 미술 이후 12세기 중엽부터 15세기, 일부 지역에서는 16세기 초까지 전개되었던 유럽 중세 미술양식을 말한다.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13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확립되었다. 그 뒤 2세기 동안 서유럽 전역에 전파되어 이탈리아에서 형성된 르네상스 미술이 지배적 양식이 되기까지 지속되었다. ‘고딕(Gothic)’이란 명칭은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인이 중세 건축을 거칠고 야만적인 고트족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비난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19세기 이래 서유럽 중세 미술의 한 양식을 가리키는 미술사 및 비평 용어로 등장하였다. 고트족은 고딕 양식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 이미 오래전 알려졌지만, 이 시기 교회 건축과 조각·회화·공예 등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하였다. 배경과 역사 당시 유럽은 도시국가와 봉건제 국가로 발전하였고, 이전 시기보다도 더욱 안정된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바탕으로 대학과 수도원이 발달하였다. 이는 플라톤적 사고와 그리스도교의 신학을 결합하고자 하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 휴머니즘은 인간을 신성한 신 아래 복잡한 위계 속에 두었고, 신은 이성을 초월하는 존재로 여겼다. 국가간 교역이 활발해지며 도시가 발달

바인 배오

바인 배오

쌀가루와 타피오카 가루를 섞어 쪄낸 반죽 위에 다양한 재료를 곁들인 음식으로, 베트남 중부 지역의 대표적인 요리이다. 납작한 원형 모양으로 쪄낸 반죽 위에 다양한 재료를 곁들인 음식이다. 베트남 중부 지역의 대표적인 요리이며, 중부에 위치한 후에(Hue)에서 유래하였다.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으로, 기본이 되는 반죽은 쌀가루와 타피오카 가루를 섞어  만든다. 이때 베트남어로 바인(bánh)은 빵이나 케이크, 떡과 같이 모든 종류의 가루로 만든 음식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쌀이나 타피오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을 말한다. 한편 베오(bèo)는 부평초(浮萍草)를 뜻하며 이는 반죽의 형태가 물에 떠 있는 풀인 부평초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쌀가루, 타피오카 가루를 첨가하여 만든 반죽을 사용하기 때문에 질감 자체가 쫀득쫀득하여 한국의 떡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있으나, 그 형태는 서양의 카나페와 같이 다양한 식품을 반죽 위에 곁들이는 형태를 띤다. 반죽 위에 올리는 재료로는 발효시킨 생선이나 새우, 튀긴 돼지 껍데기, 피클, 으깬 녹두, 소스 등이 있다. 비안 베오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주로 간식으로 먹는 음식이나, 식당에서는 점심식사나 저녁식사로도 먹을 수 있다. 조리법 볼에 쌀가루, 타피오카가루, 소금, 따듯한 물을 넣고 섞어 걸쭉한 반죽을 만든다. 여기에 오일을 추가한 뒤 반죽을 약 15분간 휴지한다. 냄비에 물을 넣어 끓이다 새우를 넣어 익힌다. 익힌 새우는 껍질을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

볼가르 역사고고유적군

러시아연방에 속한 타타르스탄의 볼가강 연안에 있는 7~15세기의 유적을 가리킨다. 중세에 번성하였던 볼가 볼가르 문명을 증거하는 유적으로서 2014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볼가르(Bolgar)는 러시아연방의 자치공화국인 타타르스탄의 스파스키 지구(Spassky District)에 속한 도시이다. 중세에 번성하였던 볼가 볼가르(Volga Bulgar) 문명을 증거하는 유적으로서 199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되었으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실사 평가를 거쳐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러시아의 26번째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되었다. 등재된 문화유산의 면적은 424㏊, 주변의 완충지역(Buffer zone) 면적은 1만 2101㏊이다. 유적지는 볼가강(Volga River)과 카마강(Kama River)의 합류점에서 남쪽으로 약 30㎞, 타타르스탄의 수도 카잔(Kazan)에서 남쪽으로 약 200㎞ 거리에 있다. 볼가강 좌안(左岸)에 접하는 볼가르 지역에 사람이 처음 정착한 시기는 500년경으로 추정되며, 고대 대불가리아(Old Great Bulgaria)가 하자르(Khazar)에 의하여 붕괴되고 나서 660년경에 쿠브라트(Kubrat)의 아들 코트라그(Kotrag)가 투르크계(系)의 불가르족(Bulghārs)을 이끌고 볼가강과 카마강의 합류점에 볼가 불가르를 세웠다. 볼가 불가르를 세운 불가르족은 현지의 핀계와 슬라브계 원주민을 지배하면서 번성하였고, 922년에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이후 오랫동안 볼가르 지역은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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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강감찬

고려의 문관 출신 장군으로 거란의 제3차 침략(1018~1019) 때 귀주대첩으로 소배압의 군대를 대파하여 거란의 고려 침공 의지를 꺾었다. 출신과 임관 옛 이름은 강은천(姜殷川)이고, 금주(衿州, 서울특별시 금천구·관악구 일대) 출신이다. 5대조는 강여청(姜餘淸)이고, 아버지는 고려 태조(太祖)의 신하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이었던 강궁진(姜弓珍)이다. 《고려사(高麗史)》 강감찬열전 말미에는 그의 탄생 설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어떤 사신이 인가(人家)에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마침 그 집에서 강감찬이 태어나 기이하게 여기고는 개경(開京, 개성시)으로 데려와 길렀다고 한다. 서울특별시 관악구에 있는 낙성대(落星垈)가 강감찬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983년 12월 정광(正匡) 최승로(崔承老)와 좌집정(左執政) 이몽유(李夢游) 등이 주관한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성종(成宗, 재위 981∼997)이 직접 참석한 복시(覆試)를 거쳐 장원으로(甲科) 급제하였다. 장원 급제 당시의 이름은 강은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승진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었고, 1009년에는 지공거(知貢擧)로써 과거시험을 주관하였다. 거란의 제2차 침략과 강감찬의 피난 제안 1010년 11월 거란의 성종(聖宗, 재위 982∼1031) 야율융서(耶律隆緖)는 40만 명의 군대로 고려를 공격하여 통주(通州,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강조(康兆)를 제압하고, 12월 서경(西京, 평양시)을 우회하여 개경(開京, 개성시)으로 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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