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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

수에즈 운하

지중해와 홍해·인도양을 잇는 운하.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인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서쪽에 건설된 세계 최대의 운하로 지중해의 포트사이드(Port Said) 항구와 홍해의 수에즈(Suez) 항구를 연결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는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하지 않고 곧바로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통로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러스트]시나이반도와 주변 지형(일러스트) (항목 편집 시, 수정·삭제 금지) 수에즈 지협에 운하를 파서 항행할 수 있게 되면 지중해와 홍해의 교통 발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착상은 고대부터 있었다. 운하를 건설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이집트 파라오 왕조 제 12왕조의 세누스레트 3세(Senusret III : 재위 1878 BC~1839 BC)가 홍해 연안의 투밀라트 계곡(Wadi Tumilat)을 통해 나일강과 홍해를 연결하고자 착공했던 공사로 추정된다. 그러나 공사 결과 내륙의 푼트(Punt) 지방 까지만 나일강이 연결되었을 뿐 홍해와는 연결되지 못했다. 파라오 제18왕조의 하셉수트 여왕(Hatshepsut : 재위 1479 BC~1458BC)이 푼트 지방에서부터 홍해로 이어지는 운하 공사를 시도했다는 흔적도 남아있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도 BC 1380년 경에 나일강과 홍해를 잇는 운하가 개착(開鑿)되었다. 그 후 이 운하는 천재(天災)와 전재(戰災)로 메워졌으나 여러 차례에 걸친 개수(改

라스굴라

라스굴라

커드 치즈인 체나(chhenna)를 작은 공 모양으로 만들어 설탕 시럽에 끓여낸 디저트로, 인도 전역에서 즐겨 먹는 인기 있는 요리이다. 우유, 식초 혹은 레몬즙, 설탕을 주재료로 하여 만든 인도의 요리로, 인도 전역에서 즐겨 먹으며 웨스트벵골 지역에서 특히 인기 있는 디저트이다. ‘로소골라(Rosogolla)’라고도 한다. 우유를 응고시켜 만든 커드치즈인 체나(chhenna)를 작은 공모양으로 만들어 설탕 시럽에 담가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체나를 크림에 담가 만든 것은 라스 말라이라고 한다. 라스굴라는 달콤하면서 부드럽고 스펀지 같은 질감을 가지며 즙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사프란을 가니쉬로 올려 먹고, 차갑게 하여 먹는다. 요리는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인도의 슈퍼마켓에서 통조림에 담긴 라스굴라를 판매하기도 한다. 조리법 냄비에 우유를 넣고 끓이다가 레몬 주스를 넣고 저어서 커드를 만든다. 불을 끄고 찬물을 부은 다음 커드를 거즈에 거르고 한번 짜내어 물기를 제거한다. 시큼한 맛을 제거하기 위해 흐르는 물에 씻은 다음 다시 물기를 꽉 짜내어 체나를 만든다. 체나를 반죽하여 부드럽게 만든다. 이때 체나는 질기거나 쫄깃하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을 가져야 한다. 체나를 작은 공 모양으로 만든 다음 냄비에 물, 설탕, 카르다몸을 넣어 설탕 시럽을 만든 뒤 카르다몸은 건져낸

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정원

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정원

독일 베를린과 포츠담에 있는 궁전과 정원 유적. 포츠담을 중심으로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500헥타르 넓이에 위치한 여러 개의 정원과 공원, 그 안의 150여 개의 건축물들이 복합적으로 묶여 199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지형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곳곳에 건축물과 정원 등을 조성하는 형식으로, 18세기 중반 프리드리히 2세가 상수시 궁전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19세기까지 프로이센 제국의 왕후들이 지속적으로 건물을 짓고 조경에 관심을 쏟은 결과물이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눈길을 끄는 건물들, 숲과 분수, 오솔길 등이 어우러진 편안하면서도 아름다운 합작품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상수시 궁전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손수 스케치를 했다는 여름 별장으로 상수시(Sans souci)는 프랑스어로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1745~1747년에 건립되었으며, 프랑스를 좋아했던 왕이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만들어 ‘프로이센의 베르사유’라 불린다. 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고 푸근한 것이 차이점이다. 앞의 대분수에서 6단의 테라스를 지나 약 20미터 올라간 곳에 세워진 길이 97미터의 단층건물로, 편안한 로코코 양식의 진수를 볼 수 있으며, 문학과 철학, 예술을 사랑했던 왕의 면모가 곳곳에 묻어난다. 왕이 직접 플루트를 연주했던 플루트 연주실, 볼테르가 3년간 머물렀다는 볼테르의 방 등 내부의 볼거리도 풍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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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김시습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등을 정리했으며 《산거백영》을 썼다. 본관 강릉(江陵). 자 열경(悅卿). 호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 법호 설잠(雪岑). 시호 청간(淸簡).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부친 김일성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읊었다 하며, 5세 때 이 소식을 들은 세종에게 불려가 총애를 받았다.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 몸을 의탁했으나, 3년이 채 못 되어 외숙모도 별세하여 다시 상경했을 때는 아버지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적 역경 속에서 훈련원 도정(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그의 앞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이어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하고 전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북으로 안시향령(安市香嶺), 동으로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 다도해(多島海)에 이르기까지 9년간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 《탕유관동록(宕遊關東錄)》 《탕유호남록(宕遊湖南錄)》 등을 정리하여 그 후지(後志)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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