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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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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말~11세기 초 해상으로부터 유럽 ·러시아 등에 침입한 노르만족(북게르만족). 원래는 고국땅인 스칸디나비아에서 덴마크에 걸쳐 많이 있는 협강(vik)에서 유래한 말로 ‘협강에서 온 자’란 뜻이다. 전투(vig), 성채화된 숙영지(wik), 해적(viking) 등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아직 정설은 없다. 이 무렵에 그들이 각지에 진출한 원인은 인구증가에 의한 토지의 협소화 때문이며, 한랭하고 메마른 땅에서 온난하고 비옥한 땅을 얻기 위하여 감행한 민족대이동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노르만족은 씨족제(氏族制)사회가 해체되고 계급사회로 이행하여 국가형성기에 이르는 과도기로서, 부족 간의 항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족장(族長)이 부족민을 인솔하여 해외로 신천지를 찾아 진출한 경우가 많았다. 일찍부터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그들에게 전쟁과 모험, 전리품의 갈망 등은 해외진출을 더욱 촉진하였다. 무자비한 침입·싸움·약탈 등으로 ‘해적 민족’으로서 각지의 공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해적행위는 민족이동뿐 아니라 전투·정복·탐험·식민·교역 등 다양한 활동을 초래하였다. 근년에 유적·유물의 발굴과 조사 및 여러 과학의 총합적 연구에 의해 파괴적인 바이킹관(觀)은 상당히 수정되어, 중세 유럽사(史)의 전 영역에 커다란 영향을 준 장대한 운동으로서 보게 되었다.

베른 옛 시가지

베른 옛 시가지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있는 중세의 옛 시가지로 1983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스위스의 수도이자 베른주의 주도(州都)인 베른에 조성된 중세의 구시가지를 가리킨다. 12세기에 아레강(Aare River)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에 건설되어 수세기에 걸쳐 발전해온 곳으로 지금까지도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정된 면적은 8만 4684㏊이다. 구시가지는 아레강이 둥글게 휘돌아가는 곳에 위치하여 동·남·북쪽의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여러 개의 다리로 강 건너의 신시가지와 연결된다. 베른은 원래 1191년 체링겐(Zähringen) 가문의 베르히톨트 공작 5세 (Duke Berchtold V)가 자신의 권력 중심지인 니데크 요새(Fort Nydegg)를 도심으로 하여 건설하였으며, 1218년 체링겐 가문이 단절되자 자유도시가 되면서 서쪽의 차이트글로헨투름(Zeitglochenturm)으로 도심을 확장하였다. 사부아(Savoy)의 보호국으로 있던 1255~1265년 사이에 도시는 서쪽의 베른 감옥탑(Käfigturm)까지 확장되었다. 1270년에는 니데크 요새를 허물고 남부 구역을 건설하였으며, 14세기에 마지막으로 확장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후 1848년 스위스의 수도가 되었으며, 1919년 서쪽으로 도시를 확장하여 신시가지를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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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

향약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 시행주체·규모 ·지역 등에 따라 향규(鄕規)·일향약속(一鄕約束)·향립약조(鄕立約條)·향헌(鄕憲)·면약(面約)·동약(洞約)·동계(洞契)·동규(洞規)·촌약(村約)·촌계(村契)·이약(里約)·이사계(里社契)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다. 시행시기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유교적인 예속(禮俗)을 보급하고, 농민들을 향촌사회에 긴박시켜 토지로부터의 이탈을 막고 공동체적으로 결속시킴으로써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실시되었다. 16세기에 농업 생산력의 증대, 이에 따른 상업의 발달 등 경제적 조건의 변화로 향촌사회가 동요하고, 훈구파의 향촌사회에 대한 수탈과 비리가 심화되었다. 이에 중종대에 정계에 진출한 조광조(趙光祖) 등의 사림파(士林派)는 훈척들의 지방통제 수단으로 이용되던 경재소(京在所)·유향소(留鄕所) 등의 철폐를 주장하고 그 대안으로서 향약의 보급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소농민경제의 안정을 바탕으로 한 중소지주층의 향촌 지배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일단 좌절되었으나 사림파가 정권을 장악한 선조대에 와서 각 지방의 여건에 따라 서원(書院)이 중심이 되어 자연촌, 즉 이(里)를 단위로 시행하였다. 이 시기에 이황(李滉)·이이(李珥) 등에 의해 중국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의 강령인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잡아주며, 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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