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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89612 Korea
서울특별시
Seoul
동작구
Dongjak-gu
銅雀區
동작동
Dongjak-dong
銅雀洞



제목 김홍일의 묘

金弘壹

올린이 장경수 등록일 2013-03-10 추천수/조회수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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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일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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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한국의 독립운동가·군인·정치가. 독립군을 이끌고 만주 ·소련 등지를 드나들며 일본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한편 중화민국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호 일서(逸曙). 초명 홍일(弘日). 별명 최세평(崔世平). 중국명 왕웅(王雄)·왕일서(王逸曙)·왕부고(王復高). 평북 용천(龍川) 출생. 진건(振健)의 3남.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부친의 부름을 받아 1913년 만주로 건너가 선양[瀋陽]에서 중국계 소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다시 귀국하여 정주(定州)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황해도의 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8년 오산동문회가 항일단체라 하여 1주일간 고문을 당하고 석방되자, 곧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1919년 중국 구이저우[貴州] 육군강무학교를 거쳐 구이저우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1년 독립군 의용군단 대장, 1923년 조선의용군 사령관이 되었다. 독립군을 이끌고 만주 ·소련 등지를 드나들며 일본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한편 중화민국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1937년 중국군 동로군(東路軍) 사령부 참모로 임명되었고, 이어 중국 집단군사령부 참모장 등을 역임하였다. 중화민국 육군 소장이 되고 1941년 육군대학을 졸업하였다. 8·15광복 후 중국에 있는 교포들의 생명 ·재산의 보호와 본국 송환에 힘쓰다가 1948년 귀국하여, 6·25전쟁 때는 제1군단장으로 참전하였고, 같은 해 육군종합대학 총장을 지냈다.

1951년 예편하여 주중대사(駐中大使)가 되었고, 타이베이[臺北]외교단장으로 활약하다가 1961년 귀국, 5·16군사정변 후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고문을 거쳐 1962년 외무부 장관에 취임하였다. 1967년부터 정계에 투신하여 신민당에 입당,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 의장이 되었다가, 이듬해 당총재 권한대행이 되어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1년 신민당 총재가 되었으나 1972년 9월 사임하였다. 건국훈장·태극무공훈장과, 중국의 대수경성훈장(大綏景星勳章)·대수운마훈장(大綏雲摩勳章) 등이 수여되었다. 저서에 《국방개론(國防槪論)》 《군대정신교육》 《대륙의 분노(憤怒)》 등이 있다. 
키워드 김홍일, 현충원, 묘, 동작구, 동작동,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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