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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후에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대표적인 역사 문화 도시로, 트어티엔후에성(省)의 성도이다. 중부의 대도시 다낭에서 북서쪽으로 80㎞ 정도 떨어져 있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고, 많은 역사 유산과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1993년 후에 기념물 복합지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후에 궁중음악은 2005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베트남 중부의 흐엉강(Sông Hương 또는 Hương Giang) 하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와 매우 가깝고, 수도 하노이에서는 540㎞, 호찌민에서는 644㎞ 떨어져 있다.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남북으로 구분하여 접근할 때, 후에는 국토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후에의 한자명(漢字名) '투언호아(Thuận Hóa, 順化)'는 14세기에 쩐 왕조가 설치한 투언 쩌우(Thuận Châu, 順州)와 호아 쩌우(Hóa Châu, 化州)에서 유래했다. 두 개의 행정 구획 중, 일찍이 후에가 속해 있던 '호아 쩌우(化州)'의 "호아(化)"가 변해서 "후에"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에 후에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북쪽에서 이주한 응우옌(Nguyễn) 씨의 활동 중심지였고,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응우옌 왕조(阮朝, 1802~1945)의 수도였다. 시내는 흐엉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펼쳐져 있으며, 강 북쪽이 구시가, 남쪽이 신시가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의 후에 기념물 복합지구는 바둑판처럼 구획되어 있으며, 많은 역사적 기념물과 건축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남쪽의 신시가에는 철도 후에역과 여행자들을 위한 많은 숙소가 있다. 상아 세공품과 유리 세공품이 특산품이며 이 외에도, 정미, 제재(製材), 섬유, 시멘트 관련

레체 플란

레체 플란

달걀 노른자와 연유, 설탕을 재료로 하여 만든 부드러운 질감의 디저트로, 필리핀의 고전적인 커스터드 디저트이다. 필리핀의 고전적인 커스터드 디저트이며, 부드럽고 풍부한 맛에 크리미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마을 축제나 파티와 같은 축하 행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어로 ‘레체(leche)’는 우유를 뜻하며, ‘플란(flan)’은 달걀, 우유, 크림, 설탕 등을 재료로 만든 커스터드에 캐러멜 시럽을 둘러 오븐에 구워낸 디저트를 의미한다. 플란으로 불리기도 하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즐겨 먹는 크렘 캐러멜(Crème carame)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크렘 캐러멜에서 우유 대신 연유가 쓰이고, 보다 많은 달걀 노른자가 첨가되어 보다 무거운 버전의 크렘 케러멜이라 할 수 있다. 레체 플란은 일반적으로 라네라(llanera)라고 하는 타원형 모양의 틀에 담겨져 스토브나 불 위에서 찌거나 굽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필리핀에서는 레체 플란이 케이크에도 적용되는데, 가장 보편적인 케이크로는 레체 플란 케이크(Leche flan cake)라 하여 필리핀식 스펀지 케이크 혹은 시폰케이크 위에 레체 플란을 올려낸 것이다. 레체 플란은 전통적으로 차게 먹으며, 밀폐 용기에 밀봉하면 냉동실에서 약 1개월간 보관이 가능하다. 조리법 달걀 노른자를 큰 그릇에 담

톨레도 역사도시

톨레도 역사도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3가지 색채가 깃들어있는 도시로 로마시대부터 16세기까지 수도였다. 198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톨레도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70킬로미터(km) 거리에 있는 인구 6만 여 명의 작은 도시로, 마드리드가 수도가 되기 전 1천 여 년 동안 스페인의 중심지였다.  도시는 로마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서고트 왕국, 이슬람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다. 삼면이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바위산 위에 건설되었으며,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고향인 카스티야-라 만차 지방 톨레도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덕분에 톨레도에는 로마시대 유물인 원형경기장부터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유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사실상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단위 면적당 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로 꼽힌다.  각종 종교 시설이나 박물관은 물론 일반 가정집까지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이 때문에 1561년 필리페 2세의 천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상실되었어도 톨레도는 여전히 스페인의 정신적인 수도로 불리고 있다. 톨레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데하르 양식 건축물이다. 무데하르는 이슬람 지배가 끝난 뒤에도 스페인에서 살았던 이슬람교도들을 일컫는 말이며, 무데하르 양식이란 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과 서구 문화가 결합된 건축 양식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스페인 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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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

환구단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의 제단. 1967년 7월 1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67년 7월 1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을 가리킨다. 명칭의 한자 표기와 독음을 환구단(圜丘壇)과 원구단(圜丘壇 또는 圓丘壇)으로 혼용하던 것을 2005년 국가유산청에서 한자 표기는 《고종실록》에 기록된 '圜丘壇'으로, 한글 표기는 고종이 제사를 지낸 1897년 10월 당시 《독립신문》을 따라 '환구단'으로 정하였다. 우리나라의 제천의례(祭天儀禮)는 삼국시대부터 농업의 풍작을 기원하거나 기우제를 국가적으로 거행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제도화된 환구제(圜丘祭)는,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고려 성종(재위 981∼997) 때부터라고 전해진다. 조선 초기에 제천의례는 큰 중요성을 갖지 못하고 억제되었다가, 세조(재위 1455∼1468) 때 왕권강화를 위해 환구제를 다시 부활시켰으나, 세조 10년에 폐지하였다. 조선을 대한제국이라 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천자가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봉행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다시 설치되었다. 지금의 환구단은 1897년(고종 34)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옛 남별궁(南別宮) 터에 단을 만들어 조성한 단지이다. 그뒤 단지 내에는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皇穹宇)를 1899년에 축조하고 신위판(神位版)을 봉안(奉安)하였으며, 19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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