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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고대 도시

호이안 고대 도시

16∼19세기 국제무역항으로 번성했던 베트남의 도시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베트남의 오래된 항구도시로 동남아시아의 전통적인 무역항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베트남 중부 꽝남주(Quang Nam Province)의 투본 강(Thu Bon River) 하구(河口)에 있으며,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호이안(Hội An)은 한자로는 회안(會安)이라고 하며, 한때는 임읍포(林邑浦)라고도 불렸다. 유럽인들에게는 ‘하이포(Haifo)’나 ‘호아이포(Hoai Pho)’, ‘파이포(Fayfo)’, ‘카이포(Kaifo)’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10세기 무렵의 사후인(Sa Huynh) 문화의 유적들이 다수 발견되며, 3세기 말레이계의 참족(Cham)이 세운 참파(Champa) 왕국 시대부터 항구도시로 번성했다. 특히 16세기 말 이후에는 인도,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 유럽의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동남아시아 최대의 무역항으로 상업적·문화적 교류의 중심지가 되었다. 1601년 광남 완씨(廣南阮氏)의 응우옌 왕조가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에게 편지를 보내 정식으로 국교를 맺은 뒤에는 일본인들이 활발히 진출해 일본인 마을이 세워지기도 했다. 1623년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관(商館)이 세워지기도 했다. 19세기 말 이후에는 투본 강의 하구에 토사가 퇴적되어 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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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프 아 라 모드 드 캉

트리프 아 라 모드 드 캉

손질한 깐양과 송아지의 발굽으로 만든 스튜로, 프랑스 노르망디 레지옹의 전통음식이다.
손질한 소 양과 발굽을 당근, 양파, 리크, 허브, 칼바도스(사과 브랜디) 등과 함께 끓인 스튜이다.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 레지옹의 전통요리로, 여기서 ‘트리프(Tripe)’는 소의 제 1위와 제 2위에 해당하는 깐양을 가리키는 프랑스어이며, ‘모드 드 캉(mode de Caen)’은 노르망디 레지옹에 위치한 칼바도스 데파르트망(Department)의 수도인 ‘캉(Caen) 지역 스타일’을 의미한다. 기원과 역사 중세 후기 무렵, 캉 지역에 있는 남자 수도원(Abbaye aux Hommes)의 수사인 시도니 브누아(Sidoine Benoît)가 개발한 음식으로, 정복왕으로 불리는 윌리엄 1세(William Ⅰ)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으로도 알려져 있다. 트리프 아 라 모드 드 캉은 전통적으로 찐 감자 요리를 곁들여 마을 모임이나 가족 모임에서 제공된다. 주재료 주재료인 깐양은 지방질이 거의 없이 담백한 맛을 가진 식재료이며, 단백질과 비타민이 많아 피로 해소나 원기 회복에 도움을 주는 식재료이다. 내장 부위이기 때문에 적절한 세척과정을 거친 뒤에 음식에 활용하는 것이 좋으며, 특히 신선한 것을 활용하여야 탈이 없다. 송아지 발굽은 칼프스 풋(Calf's foot)이라 하여 근육이나 살코기 없이 뼈와 발굽만이 있는 부위로 물에 삶으면 젤라틴과 같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지는

시호테알린산맥 중부지역

시호테알린산맥 중부지역

러시아 동부, 연해주 지방에 위치한 시호테알린 산맥의 중부지역. 울창한 온대림에 희귀한 동식물이 다수 서식하고 있어 200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18년 확장 지정 되었다. 시호테알린은 러시아 동부 연해주 지방에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산맥으로 총길이 1,200km이고, 최고봉은 2,077m인 타르드캬니(Tardoki Yani) 산이다. 북쪽의 아무르(Amur) 강에서 남쪽의 블라디보스토크 인근까지 평균고도 800∼1,000m인 산지가 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이어져 있다. 이중 약 150만 헥타르가 핵심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변의 완충지대까지 합치면 약 160만 헥타르가 된다. 이 지역에는 세계적으로 진귀한 온대림이 형성되어 있는데, 타이가 기후와 아열대 기후가 혼합되어 남쪽과 북쪽의 동식물들이 동시에 서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북부 타이가 지대의 대표종인 순록, 갈색곰, 스라소니 등이 좀 더 남쪽의 시베리아호랑이, 히말라야곰, 아무르호랑이(조선범) 등과 어울려 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만 사는 고유식물과 무척추동물의 종류와 수도 월등히 많으며, 아무르호랑이, 반달가슴곰, 호사비오리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식물상을 보면 고지대는 거의 민둥산이지만 아래쪽에는 소나무, 낙엽속, 전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또한 석탄, 갈탄, 금 등이 풍부하여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백두대간과 이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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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전봉준

조선 말 반봉건·반외세를 기치로 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이며, 녹두장군이라고도 불린다.
출생과 성장배경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자(字)는 명좌(明佐), 호는 해몽(海夢)이다. 어릴 적 유독 체구가 작아서 녹두라는 별명이 붙었고 훗날 많은 이들은 그를 녹두장군(綠豆將軍)이라 불렀다. 1885년(철종 6)에 몰락한 양반이었던 전창혁(全彰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異說)이 있으나 현재로선 전북특별자치도 고창(高敞)의 당촌 출생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전창혁은 서당을 차리고 훈장으로서 글을 가르쳤는데, 전봉준도 부친의 밑에서 공부하였다. 전봉준은 풍수지리설을 믿는 부친을 따라 출생한 당촌을 떠나 고부, 태인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여러 인물과 교유하였다. 김개남(金開南), 손여옥(孫如玉), 손화중(孫華仲) 등이 전봉준과 교유한 대표적인 인물이며, 전봉준은 이들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전개해 나갔다. 동학의 입도와 민란의 흥기 1890년(고종 27) 전봉준은 동학에 입도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고부 일대의 접주(接主)로 임명되었다. 1892년 전봉준이 접주로 있던 고부에 조병갑(趙秉甲)이 군수로 발령되었는데, 그는 농민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학정을 일삼았다. 1893년 11월 조병갑에게 불만을 품은 고부의 농민들은 전봉준을 대표로 하여 소장을 제출하였지만, 조병갑은 이를 무시하였다. 이후 익산군수로 발령된 조병갑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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