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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시 광산도시

포토시 광산도시

볼리비아 포토시주의 주도 포토시에 있는 도시역사지구 유적. 16세기 무렵 남아메리카 최대의 산업단지였으며, 198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세로 데 포토시산(Cerro de Potosí, 해발 4,824m) 아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1545년 세계 최대의 은광맥이 발견된 뒤 광산도시로 조성되었다. 17세기에는 인구 20만 명이 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권력층들은 막대한 부를 쌓았다. 17세기 이후에는 호화로운 개인주택과 20여 채 이상의 성당이 세워졌는데, 대부분 화려한 메스티소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가르멜수도회(Order of Our Lady of Carmel)의 산타테레사(Santa Teresa) 성당(1691년), 예수회의 라콤파냐(La Compañía) 성당 등이 있다. 18세기에는 볼리비아 최대의 공공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왕립조폐국을 건설되었으며, 이곳에서 에스파냐에서 유통되던 은화의 대부분을 만들어냈다. 곳곳에 광산도시의 자취가 남아 있는데, 특히 라리베라강(La Rivera R.) 부근에는 수은을 이용하여 은광석을 정련하던 정련공장이 있다. 은광석은 커다란 용광로에 넣고 휘저어 녹였는데, 동력으로는 22개의 인공호수에서 얻은 수력을 사용하였다. 전성기에는 140여 곳의 정련공장이 가동을 하였으며, 오늘날까지 레이, 돌로레스 등 2곳의 정련공장이 양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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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루시카

바트루시카

반죽 중앙을 커드 치즈로 속을 채운 뒤 오븐에 구워낸 둥근 모양의 빵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통적인 요리이다. 반죽을 커드 치즈로 채워 구운 빵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통적인 요리이며, 이때 바트루시카는 슬라브어로 불이나 화덕을 의미하는 ‘바트라(vatra)’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복수형으로는 ‘바트루시키(ватрушки)’라 한다. 요리에 쓰이는 반죽은 브리오슈 반죽과 유사하며, 치즈는 전통적으로 트보로그(творог)라 하는 프레시 커드 치즈가 쓰이는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에서 널리 활용되는 치즈이다. 이때 트보로그에는 설탕이나 꿀 혹은 바닐라, 레몬 제스트를 첨가하며 종종 잼, 건포도, 설탕에 절인 과일 등이 첨가하기도 한다. 바트루시카는 일반적으로 수프를 함께 내어 먹으며 아침 식사나 디저트로 먹는다. 러시아 북서부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성 조지의 날(St. George’s Day)에 바트루시카를 만들어 먹는다.  조리법 볼에 우유, 설탕, 이스트, 밀가루를 넣고 섞은 다음, 볼의 윗부분을 덮어 따듯한 곳에 놓고 1시간가량 휴지한다. 스텐드 믹서에 달걀 흰자와 휴지해 둔 이스트 혼합물을 넣고 작동시킨다. 여기에 채 친 밀가루와 소금을 조금씩 넣어주면서 반죽을 만든다. 반죽의 윗부분을 덮어 따듯한 곳에 놓고 1시간가량 휴지한다. 그 다음 반죽을 다시 치대어

프로뱅 지역의 중세도시 상가지역

프로뱅 지역의 중세도시 상가지역

11~13세기 사이에 발달했던 중세 무역도시이자 요새 도시로 모직물 산업으로 유명했다. 중세에 만들어진 거주지 건물, 무역 창고, 종교 건축물, 요새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드프랑스 지방과 샹파뉴 지방 사이에 위치한 프로뱅(Provins)은 예전에는 샹파뉴 백작(Counts of Champagne)령에 속해있던 요새화된 중세도시였다. 12~13세기 동안 수 많은 상인들이 거래를 위해 머물렀던 곳으로 경제적 활기가 넘쳐났다. 이곳에서 열렸던 샹파뉴지방의 시장은 북유럽과 지중해지방을 연결시켰으며 지방 산업이었던 모직물 산업을 크게 확장 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직물을 팔려는 플랑드르(Flanders) 상인들과 사려는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곳시장에서 만났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11~15세기 동안 지어진 창고, 요새, 교회, 집, 성탑과 같은 중세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2001년 프로뱅은 중세 주요 무역도시이자 요새도시로서의 그 가치와 훌륭한 보존 상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World Heritage)로 선정되었다.     11세기 초 샹파뉴 백작은 그 누구보다 빨리 장거리 무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영지 내에 있던 도시들의 지리적 이점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로뱅은 주요한 교역로들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곳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열린 시장은 항상 성황을 이루었고 12~13세기에 가서는 유럽의 주요 무역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지리적 이점만이 프로뱅 지방에 경제적 활기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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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돌칼

반달돌칼

청동기시대에 곡식의 낟알을 거두어들이는 데 쓰던 도구. 그 생김새가 대체로 한쪽이 곧고 다른 한쪽이 둥근 반달처럼 생겼다 해서 반달돌칼이라고 한다. 랴오허강[遼河] 유역에서부터 한반도 남단에 이르기까지 전역에 걸쳐 분포한다. 반달칼을 만드는 데는 두께 0.5cm 안팎의 납작한 편암 ·점판암 계통의 돌을 많이 썼는데, 겉을 매끈하게 갈고 한쪽 가에 날을 세웠다. 반달칼의 한복판에나 혹은 등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는 보통 한 개 내지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구멍 사이에 끈을 꿰어 끈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사용하였다. 전체적인 형태와 날부분과 등부분의 형상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물고기 모양[魚形] ·배 모양[舟形] ·장방형 ·삼각형으로 분류되는데, 직사각형과 반달형이 기본형이며 후기에는 삼각형이 출현한다. 장주형(長舟形) 돌칼은 한국 서북지방의 고인돌 및 팽이형토기문화와 결합하여 쓰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장방형돌칼은 대부분 양날[兩刃]로 동북지방과 압록강 중상류 유역에서 상당수 발견되며, 남하하여 여주 흔암리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단주형(短舟形)은 장주형에서 발전한 형식으로 남한의 전지역에서 쓰여지며, 삼각형 돌칼은 영암 월송리, 부여 송국리, 대평리와 같이 남한만의 지역성이 심화된 것이다. 그리고 동북지방은 반달돌칼문화가 전파되었지만 농경이 어려워서인지 반달칼이 널리 쓰이지 않았으며, 장방형의 돌칼이 많이 쓰였다. 한편 압록강 유역과 그 이북의 중국 동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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