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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냉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극체제하에서의 사회주의진영과 자본주의진영 간의 정치 ·외교 ·이념상의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쟁으로, 열전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냉전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평론가 W.리프먼이 저술한 <냉전 The Cold War>(1947)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되었고, 미국의 재정전문가이며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버나드 바루크가 1947년 의회토론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항복하자 미·영 양국과 소련 사이의 불안정한 전시동맹관계는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1948년까지 소련은 동유럽 제국에 좌익정부를 건설하였으며, 미국과 영국은 독일 내 양국 점령지구의 대소(對蘇)배상을 중단하는 것으로 이에 대응하였다. 미국과 영국은 소련의 항구적인 동유럽 지배와 서유럽 및 그밖의 지역에서 소련의 영향을 받는 공산당이 집권할 가능성을 우려하였다. 한편 소련은 독일의 군사위협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동유럽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주로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에서 공산주의를 세계적으로 보급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47년 3월 “오늘날 발트해(海)로부터 아드리아해(海)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둘러싼 철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반공연설, 미국의 상·하양원합동회의에서 미국이 공산세력을 저지하는데 지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트루먼 독트린, 이어 6월 트루먼 독트린에 발맞추어 유럽부흥을 위해 실시한 마셜 플랜 등이 초기에 자본주의가 행한

나시 끄라부

나시 끄라부

버터플라이피(butterfly pea)의 꽃잎으로 물들인 푸른색의 밥에 생선이나 고기 요리, 삼발, 피클, 샐러드 등을 곁들여낸 것으로, 말레이시아 북부 켈란탄주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요리이다. 파란 꽃잎으로 물들인 푸른색의 밥에 각종 반찬을 곁들여낸 음식이다. 말레이시아 북부 켈란탄주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요리로 ‘나시 끄라부 끄란딴(Nasi kerabu kelantan)’이라고도 한다. 말레이어로 ‘나시(Nasi)’는 쌀을, ‘끄라부(kerabu)’는 각종 허브와 생 야채를 잘게 썰어낸 샐러드를 의미한다. 푸른색의 밥이 이 요리의 가장 큰 특징인데, 이는 다년생의 초본 식물로 꽃에 안토시아닌 성분이 있어 파란색을 띠는 버터플라이피(butterfly pea)의 꽃잎을 넣고 밥을 짓기 때문이다. 밥에 곁들이는 것으로는 프라이드 치킨, 이깐고랭, 삼발 블라찬, 간 코코넛, 끄라부, 피클, 소금에 절인 삶은 달걀, 끄루뽁, 꾸아 뚜미스(Kuah tumis: 고추 등 각종 향신료를 첨가하여 만든 매콤한 맛의 소스) 등이 사용될 수 있다. 조리법 버터플라이피의 꽃을 따뜻한 물에 우린다. 밥솥에 씻은 쌀을 넣고 꽃을 우린 물로 밥을 짓는다. 블랜더에 붉은색 칠리 고추, 생강, 마늘, 샬롯, 레몬그라스, 물 약간을 넣고 갈아 페이스트를 만든다. 팬에 오일을 두르고 페이스트를 넣어 볶다가 코코넛 밀크, 타마린드, 피시 소스, 소금, 설탕을 넣고 걸쭉한 질감이 될 때까지 끓여 꾸아 뚜미스를 완성한다.<

박영효

박영효

한말의 정치가. 급진개화파로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했다. 유대치를 중심으로 김옥균·홍영식·서광범 등 개화당 요인들과 결속, 정치적 혁신을 추구했다. 일본 세력을 이용하여 청나라의 간섭과 러시아의 침투를 방어하고자 했다. 1861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반남(潘南)박씨이다. 그의 부친은 진사 출신인박원양(朴元陽)이며 초명은 무량(無量)이었다. 12세 때 박규수(朴珪壽)의 천거로 철종의 딸 영혜옹주(永惠翁主)와 결혼하여 부마(駙馬)가 되고 금릉위(錦陵尉)의 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영혜옹주가 결혼 석달이 채 되지못해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소실(小室)을 맞아들였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1879년 혜민서(惠民署) 제조, 1881년 의금부(義禁府)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임명되었다. 일본 수신사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그 공로를 인정받아 1882년 한성판윤(漢城府判尹)에 임명되었다. 박규수의 영향으로 개화사상을 접하게 되었으며 유대치(劉大致)를 중심으로 김옥균(金玉均) ·홍영식(洪英植) ·서광범(徐光範) 등 개화파 인물들과 교류했다. 유교사상을 부정하고 평등과 민권사상 등 정치적 혁신을 주창하며, 급진적 개화사상가가 되었다. 특히 박영효는 일본의 세력을 이용하여 청나라의 간섭과 러시아의 침투를 억제하는 데 주력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으로 파견되는 수신사(修信使) 대표에 임명되어 민영익 ·김옥균 등과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개혁을 시도했다. 도로를 관장하는 치도국(治道局), 경찰업무를 담당하는 경순국(警巡局), 신문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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